여러 가지 진실 중 어느 것을 말해야 할까 여러 가지 진실 중 어느 것을 말해야 할까: 구명선

12 November - 3 Dec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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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앉아 있는 그루터기 위에 손을 놓았다. 그러자 마모되어 꺼칠꺼칠한 목재의 촉감이 느껴졌다. 나무는 비와 고독에 바래졌는지 고색창연했다 (하지만 잘려지고 찍혀진 죽은 나무, 불을 지피려고 해도, 판자로 만들려 해도, 연인들의 사랑의 벤치가 되는 것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 이상으로 고독하고 슬픈것이 있을까.).' 이 나무와의 접촉이 그녀에게 일종의 우아한 기분, 애정을 불러 일으켜서 자신도 모르게 놀랍게도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프랑소와즈 사강, 『고독한 연못』) ● 2008년 첫 번째 개인전 『복수할 거야』를 시작으로 구명선의 개인전 제목들은 단호했는데, 이번 4회 개인전 전시 제목부터는 무언가 달라진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배경이 생략된 화면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구명선의 여자들은 각자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녀들의 매력은 '복수할 거야', '돈 좀 있어?', '이건 멍미',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냐'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증폭된다. 이 제목들은 대부분 시대상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유행어 혹은 유행가 가사에서 따온 것들이다. 평소 구명선은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그녀에게 인상을 준 글을 빼곡히 적어 놓고 그림이 완성되면 이 노트들을 꼼꼼히 살피며 골랐다. 그러니 그녀가 선택한 이번 전시 제목도 어떤 내재적 필연성에 의해서 그녀로부터 나온 것이리라. 구명선은 어릴 적 즐겨 보았던 순정만화의 인물 양식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여 뾰족한 턱, 가냘픈 몸으로 이상화된 여성스러움과 비현실적인 반짝임을 자신의 고유한 화법으로 만들었다. 한때 한국과 일본의 미대 입시에서 치러지던 연필 데생으로 만화 속 여자들을 현실로 불러낸 구명선의 소묘 작품은 등장과 함께 빠르게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첫 개인전이 있던 2008년 가을, 처음 열린 아시아프 Asiaf prize 를 수상하기까지 했다. 이후로 2010년 중앙미술대전 작가로 선정되고 크고 작은 전시들에 꾸준히 참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왔지만, 이번 개인전까지는 최대한 전시를 자제하며 숨을 고르듯이 조용히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태원에 위치한 수도원의 작은 기도실을 닮은 폭이 2m가 안 되는 작업실에서 작가가 연필과 종이, 지우개같이 소박하고 단출한 재료로 몰입과 회의를 반복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 수도자의 기도를 연상시켰다. 이제 스스로 원한 고독의 시간을 보낸 구명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진실을 보려는 것과 같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실은 회상이라는 관점의 변화를 통해 다중의 화음을 만들어내고, 그녀의 손은 이 리듬과 이 진실들에 관한 이야기를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