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얼룩: 안상훈

14 February - 27 April 2025
  • ‘얼룩’은 대상과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기묘한 흔적이다. 상징적 질서 속에서 얼룩은 빠르게 제거되어야 할 더러운 잉여나 불필요한 세부에 불과하지만 종종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해, 감추어진 삶의 진실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해준다.
    서희원,「얼룩을 가리는 손」에서

     

    안상훈의 회화는 드러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사라질 운명의 사진에서 출발한 이미지는 수차례의 회화적 결정을 거쳐 추상적인 화면으로 변화하며, 그 흔적은 표면 위에 고정된다. 이 과정에서 ‘손’과 ‘얼룩’의 개념은 작품의 기저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손은 작품의 모든 과정을 거쳐 흔적을 남기고, 얼룩은 그 흔적을 받아들이며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한다. 얼룩은 종종 사라지기 직전의 진실을 드러내며, 화면 속에서만큼은 잠시나마 고요히 머문다. 이 얼룩은 사라짐과 남겨짐 사이를 가로지르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생된다. 작업은 바로 그런 사라짐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아이폰 속 휴지통에 버려진 사진들은 기억의 파편처럼 흐릿하게 지워질 운명이지만, 그는 그 흐릿한 순간들을 화면 위로 불러내어 수채화, 아크릴, 스프레이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첫 번째 화면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구상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는 다시 두터운 물감층과 핑거 페인팅을 통해 변형되고 파괴된다. 이는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단초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최근 작품들인‘그 식물은 겨울을 견디지 못했다’, ‘초록산타’,‘아침체조’처럼 다양한 레이어를 하나의 층으로 상상하여 오일 물감만으로 납작하게 조합하기도 한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그가 회화를 대하는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는 회화에 대한 전통적인 의미에 저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회화를 단순히 무언가를 재현하는 도구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참조나 전유의 흔적이 제거되거나 불능 상태로 남는다. 작품의 제목조차도 이미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화면 안의 언어적 흔적들도 의미화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 이러한 태도는 회화가 갖는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현대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미 부여의 경향과 달리, 그는 표상과 의미망을 제거함으로써 회화 그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질서 속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동시에 미끄러지듯 마주하는 불확실성 앞에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에게 불확실성은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과 실험의 기회이기도 하며, 미완성의 상태와 불안정 속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반복하며, 자신의 그림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 뿌려지고 덮이고 흘러내리고 다시 흩어지는 장면은 재현되나 불가능하게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로 존립할 것이다. 

    변함없는 것은 그것이 그 곳에 있었고 재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작가노트 중)       

                                                                    

    전시《손과 얼룩》은 3년 만에 갤러리조선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적으로, 작가가‘오십세’를 맞이하여 시간과 존재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회화적 실험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중년이라는 시점에서 마주하는 변화를 신체와 시간, 창작의 과정이 맞물려 흐르며,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불명료한 경계를 탐색한다. 특히, 중년이 마주하는 불확실성과 선택의 갈등을 작품 속에 담아내며, ‘이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더 알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한 나이 듦을 넘어,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철학적 태도를 반영한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우리는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도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된다”고 말했다. 오십은 ‘철학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젊을 때는 무한한 가능성이 손끝에 닿아 있지만, 중년이 되면 그 가능성은 차츰 한계라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의 주인이 아니다. 결림과 통증을 외면하고, 무리하면 몸은 곧바로 일상 속에서 그 대가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중년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더 알 수 있을까?” 이는 일찍이 칸트가 품었던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오십 이후, 남은 삶을 의미 있게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주해야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자신의 예술적 탐구를 통해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회화라는 은유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그림은 바로 이 시간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삶과 존재에 관한 것이다. 

     

    전시 공간은 80여 점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거의 빈틈없이 구성된다. 색채의 얼룩이 가득한 거대한 회화의 장면은 마치 회화라는 매체가 체화되어 하나의 물질 덩어리로 반응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의 회화는 불확실성 속에서 반복된 결정을 통해 부분과 전체를 오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는 작가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이자,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아름다움과 창작의 과정을 마주하며, 손과 얼룩이 맞닿은 과정에서 작품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이유와 불안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