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속에 날 가두지 마세요: 구명선
나의 작업은 고전적인 초상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 인물이 존재하는 이 구도는 미술사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초상화는 사실적인 인물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하지만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모사적 초상화'는 기록이라는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모던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초상화를 볼 수 있다.
20세기에 다양한 대중매체들이 발전되면서 초상화의 변화도 찾아왔다. 고전미술의 액자가 아닌 움직이는 액자로써 TV나 영화 등의 새로운 프레임이 생겨났고, 다양한 이미지들이 생산되었다. 그 중 만화와 애니메이션 속의 초상들은 독창적이며 단순화된 이미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초기 작업은 이러한 대중매체의 만화적 이미지를 회화적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경제관련 카테고리에서 자주 들려온다. 미래적인 이 단어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어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던 이전의 프레임은 일방적인 스토리와 이미지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상호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가상공간에서 게임을 하고,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를 보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가상공간의 삶이 시작되면서 실제나의 얼굴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 되었다.
요즘 우리는 게임을 할 때 아바타의 이미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메신저 속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적절한 감정을 표현한다. 단순화된 만화적인 이미지들은 우리의 생활에서 우리를 대변하여 더욱 자주 쓰이고 있고, 다른 초상으로 활동하는 것에 우리는 익숙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육체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정신활동은 보다 자유롭고 다양해지는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모바일이나 IT기기 안의 생활이 일상이 되는 요즘, 우리의 정신활동은 보다 활발해지고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다른 얼굴로 살아가게 되었다. 육체의 활동보다 정신의 활동이 중요해지는 전환점이 시작되었다면, 우리의 초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 것인가?
고전미술의 사실적인 초상화는 지금 우리의 육체와 닮아 있지만 현대의 삶과 비교했을 때 '사실적'이지는 않다. 새로운 프레임들이 생겨나고 우리의 초상화는 변화되어왔다. 지금은 새로운 프레임 안에 우리의 모습을 담은 새로운 초상화를 그려야할 시기이다. 그러니 낡은 프레임 속에 날 가두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