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mpha Lympha! (림파 림파!): Fa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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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 배은아
후원: 서울문화재단2023년 12월 23일부터 2024년 1월 17일까지 신현정 작가의 개인전 <림파 림파!>가 갤러리 조선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25)에서 열린다.
<림파 림파!>는 가늘고 미미하지만 힘차게 생명을 이어가는 투명한 림프처럼, 물질과 신체 사이를 유연하게 헤엄쳐 나가는 신현정의 회화 표피들이 연주하는 색의 향연이다.
신현정은 회화의 구성요소로서 표면과 지지대를 해체하고 확장하는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구축해왔다. 특히 명상과 요가 수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 자연과 인공, 대상과 주체와 같은 이원론적 세계를 통합하는 내면의 집중에 몰입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의 한계 앞에서, 작가는 자신을 내려놓고 변화를 허용하는 확장된 주체로서 회화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본 전시는 ‘고정됨’없이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물의 생명력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는 물질의 결합과 충돌을 <림파 림파!>라는 리드미컬한 구호에 담아본다.
림파(Lympha)는 물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우리 몸의 길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림프(Lymph)의 어원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곳에 살지는 못한다.
누구나 어딘가에 산다.
어떤 것도 모든 것에 연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무언가와 연결된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 하기』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조건 속에 살아간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명제 같지만, 나에게 주어진 조건이 만들어내는 세상과 당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다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감히 ‘우리’ 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되짚어 볼 수밖에 없다. 물질과 비물질,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와 비생명체, 자연과 비자연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경계들은 사실 그들 각자가 처한 조건의 ‘취약함’ 앞에 비로소 평등하다. 신현정은 이러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트러블(trouble)을 마주하고 포용하는 서로 다른 객체로서 회화의 표면을 제안한다. 이는 예술의 견고함에 종속되어 있는 회화의 권위를 내려놓고 세상과 소통하고 상호 관계 속에 호흡하는 회화로서 그 자체의 전율을 위한 스코어(score)이다. 그렇다면 신현정이 추구하는 끊임없이 환경에 의해 변형되어 새롭게 접속하는 잠재체로서 회화, 쉼 없이 새로운 개체로 전이될 뿐 지금 여기 한 순간의 접촉으로서 회화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까?
환경이 실제로 인간의 신체와 마음 내부에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세심한 관용을 베풀며
일상 생활 속에서
정치적으로, 기술적으로, 과학적으로
당신 안에서 전진하고 있음을
인정하라.
제인 베넷 , 『생동하는 물질』<림파 림파!>에서 신현정은 자신의 몸과 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물감을 실어 나르고 천과 함께 춤추며 그 정동에 몸을 맡기는 사이-존재(In-between)로서 회화 공간을 선보인다. 작업 과정 속에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물질과 맺는 사용자/피사용자의 관계를 전복하여, 작가는 물질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관계적’ 전환을 시도한다. 작가는 생활 속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멀베리(뽕나무잎), 아크릴, 락스(탈색 작용)와 같은 염료가 물과 ‘만나며' 생성되는 무늬와 흔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표면으로 옮겨온다. 멀베리, 아크릴, 락스는 각각 천연, 인공, 독성 성분을 내포하는 염료로서 삶의 환경을 통해 피부로, 호흡기로, 소화기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작가는 이들이 몸에 침투하여 세포와 반응하고 변형되어 다시 배출되는 현상에서 착안하여, 염료들이 물을 만나 자기의 습성대로 천 위에 창발할 수 있도록 사용자로서 손을 내려놓는다. 작가는 이를 ‘내맡김의 시간’ 이라고 하는데, 주체를 내려 놓고 물질들이 스스로 작동하고 상호 관계하며 조직화하도록 기다리는 객체 지향적 태도이다. 작가는 또한 우리가 입고 벗는 린넨, 실크, 텐실과 같은 다양한 천을 염색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지지대에 걸쳐 놓으면서, 회화를 일상의 공간 안으로 연결시킨다. 이와 같이 창작 활동의 주체로서 신체와 객체로서 태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신현정은 자연과 인공, 인간과 물질, 예술과 일상이 공생하는 포용하는(inclusive) 회화, 그리고 더 나아가 추상회화가 세상과 만나는 지점의 ‘다다름’을 고민하는 사유하는(thinking) 회화로 확장해 나간다.
이번 전시에는 2022년 신현정이 입주했던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제작된 염색 천들이 변형되고 재조합된 세 개의 시리즈 <변형과 독과 시(2022-23)>, <500만년 만에 펼쳐진 몸(2022-23)> 그리고 <저항 끝에 다다르는 투명함(2022)>과 함께 신작 <숨은 성운을 향한 릴레이 인사(2023)>가 소개된다. 서로 충돌하고 얽히며 지나온 2023년을 뒤로 하고, 앞으로 살아나갈 2024년을 연결하는 <림파 림파!>의 문을 열며, 잠시나마 몸 속을 가득 채운 가느다란 물길을 감지하고 그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리듬에 몸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