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당신의 마음 속이네: 구명선

2 - 30 November 2016
  • 걷다보니 당신의 마음속이네 16.11.2 - 11.30

    구명선
  • Press Release Text

     저자 : 박영택(경기대 교수)

    제목 : 알 수 없는 지평에 가닿는 눈
    "너의 눈은 너무나 심오하여 나는 거기서 나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 루이 아라공

    오랫동안 드로잉은 밑그림, 미완의 그림, 혹은 작품으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토대로만 여겨졌다. 그것은 결핍과 잉여, 불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드로잉은 그것 자체로 이미 충만한 삶과 세계를 가설하고자 한다. 평면의 종이를 바탕 삼아 그 위에 단색의 단출한 재료만으로 신선한 시각 장을 펼쳐 보이는 드로잉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민첩성, 순발력, 편리성 등이 부각되는 등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이 과도한 스케일, 스펙터클한 볼거리, 현란한 논리와 개념, 테크놀로지와 기술적이고 인공적인 매체 아래 무장하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이 소박한 드로잉은 무거움을 지우고 가벼운 보폭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여러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온전히 한 개인의 육체와 감각에 의존하며 가장 본질적인 재료에 의존해 밀고 나가는 여정이 드로잉이 그리는 궤적이다. 손의 떨림을 보는 이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드로잉은 한 개인의 몸을 통과한 것이고 그 떨림의 정체를 무엇이라 이름 붙여 파악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것은 묘한 생기와 독특성을 지니며 다가온다. 떨어댄다. 그것은 이른바 ‘두 번째 몸’ 이기도 하다.

    구명선은 종이와 톰보 4B 연필, 지우개같이 소박하고 간소한 재료만으로 그림을 그린다. 검은색 톤의 조절로 이룬 단색화이자 무수한 선긋기와 지우기, 문지르기를 반복하는 이른바 입시 소묘기법이다. 그런데 구명선은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그리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그 석고데생, 입시소묘 기법을 응용해 여자의 얼굴을 그린다. 아마도 오랜 시간 훈련했고 잘 다룰 수 있고 자신이 있는 연필로 그림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성격이 짙다. 구명선은 그 석고데생, 입시소묘의 방법론, 연필의 맛 등을 고스란히 이용해서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 아니 그릴 수 있음을 방증하고자 한다. 연필 하나로만 그려지는 그림들을 떠올려본다. 개미나 도끼 등을 정밀하게 그린 원석연, 신문지 표면을 연필로 새까맣게 덮어나가다 결국 표면을 파열시키는 최병소, 한지에 샤프심으로 기하학적인 도상을 그려낸 박미현, 일반 연필만으로 도자기를 단독으로 설정해 묘사하는 이희용, 흑연의 어둠을 극한으로 밀어 올리는 김은주, 거대한 얼굴과 심연 등을 콘테 등을 사용해 숭고하게 구현하는 김명숙, 매혹적인 선을 이끌고 다니는 윤향란 등이 대표적인 작가로 떠오른다. 구명선은 익숙하고 친근한 톰보 4B 미술용 연필로 가상의 소녀를 그린다. 작가는 석고데생 기법을 응용해서 흑백사진의 중간 톤, 섀도우, 하이라이트 효과를 만들어 만화 캐릭터와 같은 여자 캐릭터를 형상화하고 이 도상을 빌려 자신의 기억, 감정 등을 투사한다. 창문 같은 눈을 단 순정만화 주인공을 닮은 캐릭터는 명암과 빛의 드라마틱한 처리로 이룬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소 섬뜩하게 출몰한다.

    평소 구명선은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인상 깊은 글을 빼곡히 적어 놓기를 즐긴다고 한다. 그 문장으로부터 모종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것이 자연스레 그림으로 전이된다. 이후 다시 노트들을 살펴 그 안에서 그림에 어울리는 제목을 고른다고 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문장으로부터, 다소 막연한 기억과 감정에서 풀려나온 그림들은 지극히 관념적이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사물을 화면에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 혹은 사건에 대한 관념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실제 작가는 자신의 소묘를 “흰 벽에 연필로 상처를 내듯 긁어내는 것”에 비유한다.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관념들을 드러내 보이게 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막연한 느낌, 희박한 기억 등을 가까스로 시각화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상징화하는 것은 구명선의 그림 속에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 같은 여자/소녀들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검은 배경이다.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움 혹은 난해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충만한 표정, 우수에 적셔진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상상해서 만든 가상의 존재들이고 작가가 만든 드라마 속의 배우들이다. 배경은 단호한 어둠이거나 모호한 장소가 단독으로 설정되어 펼쳐져 있다. 바람에 뒤척이거나 반짝이는 조명이 발광하는, 깊은 밤의 기운에 눌린 이 눅눅한 풍경은 다분히 초현실적이고 이상한 기운, 언캐니한 안개에 감싸여있다.

    상상과 환상 속 여성 이미지
    구명선은 어릴 적 즐겨 보던 순정만화의 인물 양식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몽환적인 표정, 긴 얼굴, 눈동자를 상실한 커다란 눈, 뾰족하고 무척이나 도도해 보이는 턱, 가냘픈 목선과 움푹 패인 쇄골, 호리호리한 몸, 길고 치렁한 머리카락, 호사스럽고 관능적인 옷 등으로 이상화된 여자들은 모종의 감정을 전달한다. 상반신의 여자 캐릭터는 동일하면서도 다양한 양상을 연출한다. 긴 문장을 지닌 그림의 제목이 그것을 방증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감각적인 제목으로 자신의 감정을 극화하는 것이다. 여자 캐릭터는 작가에 의해 고안된 가상의 존재이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대신하는 일종의 아바타다. 작가는 초기에 잡지나 ‘인터넷 게임, 카탈로그에서 샘플링을 한 여성 이미지를 차용해 자신의 감정에 가장 잘 부합하는 망가 속 소녀 이미지로 번안해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시키는가 하면 상상, 환상 속에서 여성 이미지를 길어 올리는 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녀/여자 캐릭터는 작가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정 상태를 전달하고 있다. 특정 장면에 맞는 의상을 걸치고 그날의 감정에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서 극적인 순간에 처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신디 셔먼의 여성 캐릭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그 여성 연기자를 동원해 드라마를 기술하고 특정 장면을 연출한다. 이 소녀/여자들은 전형적인 여성성을 발산하면서 이름 지을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발산한다. 새까만 흑연에 의해 탄생된 구명선의 소녀들은 아름답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 구명선의 여자들은 일종의 자기도취적 캐릭터에 해당한다. 동시에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은밀히 드러내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여자의 몸과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대상화해서 보여주는 한편 무엇처럼 보일 수 있는지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까만 어두운 바탕을 뒤로하고 유령처럼 출현하는 이 여자들의 얼굴과 몸은 기이한 영기를 발산한다. 작가는 자신이 그린 여자/소녀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신을 도모하고 지난 추억과 기억, 감정을 복원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아 연기를 놀이한다. 그림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존감을, 우아함과 이상적인 자신을 산종(散種)시키는 그런 놀이 말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이 소녀/여자들은 우아하고 매혹적으로 어둠 속에서 발광한다. 그것은 형체를 지닌 몸이라기보다는 마치 비물질적인 혼처럼 자리한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흐린 얼굴, 어두운 날의 분위기다. 그녀들의 몸은 약간씩 굴절되면서 모종의 감정을 분비한다. 눈/빛과 함께 말이다. 구명선의 작업에서 비현실성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이 빛은 순정만화에서 흔히 접하는 여자 주인공의 과장된 눈에서 발사되는 반짝임으로 극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또한 그 빛은 사물들의 모습을 결핍된 부분(그림자, 어두움)들과 다채롭게 섞여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빛과 어둠이 서로 함께 한 세계를 이룬다.

    사실 이 소녀/여인의 얼굴은 하나의 가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비어있는 눈망울, 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은 물질적 실체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다. 눈은 그 누군가의 독자성 그 자체다. 눈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간혹 눈은 눈물로, 눈빛으로 대체된다. 구명선의 그림은 눈을 대신해 그 강렬한 눈빛이 그 무엇을 지시한다. 눈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려주는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들 속으로 그 마음의 진상을 숨겨’(서동욱) 버리기도 한다. 구명선의 젊은 여자들은 큰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눈은 애매하다. 하나의 명확한 의미로 확정지을 수 없이 심오하다. 너무 다채롭고 기복이 넘치는 감정들이 요동쳐 도무지 바닥에 숨어 있는 마음을 알아낼 수 없다. 나에게 타인의 눈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그 의미를 읽을 수 없는 ‘무’다. 그러니 타인의 눈은 미로다. 구명선의 그림 속 여자들은 측량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모호한 눈/빛으로 뿜어낸다. 그것은 언어로 규정할 수 없고 재현될 수 없는 그런 눈, 마음이다. 그 눈은 기이하게 커다랗고 길고 눈동자를 망실한 채 그저 빛으로 현현할 뿐이다. 그렇게 잠시, 찰나적으로 반짝이고 스쳐지나갈 뿐이다. 작가는 그런 눈을 그리고자 한다. 그 눈은 수많은 추억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을 복기하고 기억하는 눈이자 그 모두가 명확하지 않은 눈이다. 그 눈은 우리의 시선이 그간 전혀 알지 못하던 지평에 가닿게 한다.

    월간미술,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