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erworld: 황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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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은 꿈과 무의식에 기반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데서 출발한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린시절부터 해온 일이며 지금까지 수천개가 만들어져왔다. 캐릭터들은 자동적인 과정에서 나오며 그것들은 끝없는 환생 (endless reincarnations)에 의해서 계속 변형된다.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는 꿈의 논리 (dream logic) 에 의해 연결되어 유년, 꿈, 죽음, 그리고 그 이후 라는 상상적인 사이클을 순환한다.
이것은 읽혀지기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즐겨지기위한 음악과도 같다.
유령과 초자연적인 일들은 항상 나를 매료시켜왔다. 살아있는것과 유령이 분리되지 않은(unexorcised) 아주 어린시절이나 꿈의 이미지들을 탐구하려한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의 추천서를 써왔는데 그 중 황은정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녀가 졸업후 뉴욕으로 유학을 가겠다 하여 난 그녀의 추천서 첫 문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아마) ‘황은정은 천재다!...’라고 썼다. 칭찬에 그리 인색하지 않은 나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최상의 칭찬이며 찬사이다. 천재를 대단하게 해석한다면 ‘설마 농담이겠지!’하겠지만 그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의미한다면 예술적 배움의 시간이 길지 않았던 황은정은 실로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이고 독창적인 작품에 담긴 희노애락 오욕칠정의 번뜩이는 유머와 재치가 가히 놀랍다.
황은정은 연대 영문과 졸업 후 혼자 그림 그리다가 1997년 이대 서양화과 3학년으로 편입하여 졸업까지 2년을 다녔다. 그즈음 2학년 드로잉 수업에서 처음 만난 황은정은 어딘지 숫기가 없고 깡마른 체구로 늘 혼자 구석에서 엉성한 자세로 소심하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다. 당시 황은정은 어린시절 기억의 집, 주변의 다양한 에피소드, 기이한 형태의 동물들, 유령같은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적 상황을 그렸는데 얼키고 설킨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색바랜 색채들로 채워진 그림들은 해학적이면서도 주술적인 아우라를 뿜어냈다. 늘 쓱쓱 거침없이 그리는 모습에 어느 날은 ‘ 은정인 어디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하고 물으니 머슥하게 머리를 가르키며 ‘모르겠어요. 여기서 자꾸 생각이 떠올라요.’ 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던 그녀의 천진한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까지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당시 수업중 현대미술사 책 한권을 정독한후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 재료들을 연구, 자신에게 흥미로운 재료로 작품을 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던 적이 있다. 그 어디서곤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바 없던 황은정에게 현대미술사 책은 그야말로 예술 지식 탐구의 보물창고였고 모든 작품 재료들을 푸른색 색연필로 밑줄 치며 성실하게 조사한 최고의 리포트를 제출하였다. 문학성이 농후하고 각종 재료들이 기기묘묘하게 묘사된 그 리포트를 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더불어 그녀가 택한 작품 재료의 즐거운 아이디어는 음식이었다. 과자로 된 바로 나의 초상을, 그것도 심심치 않게 반려견까지 함께 만들어 연구실(미대에 공간 부족으로 인문대 교수연구동 7층 꼭대기 다락방을 사용하였던 97년 당시) 앞 어두운 복도 끄트머리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며 그녀의 그림 속 유령처럼 나를 기다리던 모습은 지금도 생각하면 내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황은정은 현재 10 여년째 뉴욕에 거주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일년이 멀다하고 세계각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대에서 잠시 드로잉워크샵 영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도 그리 심각하지 않은 적절한 무게로 꿈과 무의식에 기인한 상상의 캐릭터들을 만들어내고 그 유령같이 초자연적인 캐릭터들은 끝없이 환생을 하듯 생성되고 자라나며 사라지고 또 순환한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황은정과 그녀의 그림들은 어느새 귀여운 친구들 같이 우리 귓가에서 윙윙거린다.
우순옥 (작가,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