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의 대화: 전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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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점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예는 원뿔 곡선이다. 원뿔을 어떻게 자르는가에 따라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 등의 다양한 도형이 나올 수 있다. 원뿔이라는 형태는 이러한 다양한 도형들이 접혀 있는 것이며, 잘랐을 때 다양한 도형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주름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원뿔의 꼭지점이 바로 이 도형들의 시선의 점이다.” (질 들뢰즈,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40 쪽)
진화를 거듭하며 인간의 몸에는 많은 기관들이 퇴화되었다. 새끼발가락, 꼬리뼈, 사랑니 등은 그 잔재다. 반면 인간에게는 퇴화되어 사라진 것이 아닌, 가시화 되지 않은 추상적 기관이 있다. 뿔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에게는 사슴이나 기린, 혹은 소와 같이 (보이지 않는) 뿔이 있다. 하지만 뿔이 인간 신체의 어느 부위에 위치하고 있는지, 개수는 몇 개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뿔의 원리와 기능을 시각적으로 설명해 볼 수는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18세기 르네상스로 돌아가야 한다. 원근법을 설명한 그림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여인을 그리는 한 제도사 Draughtsman making a Perspective Woman>(1592)는 뿔의 형성되는 원리와 그것의 작용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한 여자가 누워있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자신 앞에 있는 격자프레임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이때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관찰 대상을 분할하는 격자프레임으로 실을 팽팽히 당겨 선을 잇는다면 하나의 원뿔이 생겨난다. 이 비가시적 원뿔은 한 인간이 자신의 척도에 따라 사물, 더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기하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인간의 뿔은 어릴 때 사슴의 그것처럼 유연하기에 다른 뿔과 접촉했을 때 서로간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기 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관점이 뼈처럼 고정되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12살 이상이 된 사슴의 뿔이 모양이나 가지의 수에 변화가 없는 것과 달리 인간의 뿔은 영원히 불변하는 것으로 응결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뿔을 통해 타인과 접촉하는 과정-반목과 화해, 분리와 공유, 이해와 오해, 사실과 해석-에서 지속적으로 세상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축소시키기도 한다.
<뿔의 대화>는 개인들이 살아오면서 갖게 된 자신만의 이야기, 기억을 통해 생성된 뿔들의 만남을 유도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독립된 두 개 이상의 멜로디가 동시에 연주되면서 선율을 엮어나가는 대위법처럼 뿔들은 서로 부딪히면서 자신과 사물, 그러고 더 나아가 세계와 현상에 대한 견해를 규정하는 사고방식이 변하게 되는 변주를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뿔은 유연해지고 뿔이지만 더 이상 이전의 뿔이 아닌, 뿔의 밖으로 나아가는 낯섦을 야기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뿔로 끝없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