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Ghost, Scrolling the World: 최성록

23 September - 9 Octo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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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최성록 개인전 <유령의 높이> : Being Ghost, Scrolling the World


글. 유원준 (미술비평)

#1 고정된 개체, 변화하는 현실

화면 중앙에 작은 자동차가 나타난다. 화면은 빠르게 자동차의 움직임을 쫒는다.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변화하지만 자동차와 화면은 고정되어 있다. 익숙한 풍경들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중앙의 자동차는 화면의 중심을 지킨다. 자동차에 뒤따르는 연기만이 자동차의 움직임을 드러내며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최성록의 신작 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고정된 개체로부터 변화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현실 속의 개체가 변화하는 것이 아닌 고정된 개체 주변을 현실이 변화하며 쫓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우리에게 현실-세계는 고정된 상수 값으로 존재했다. 변화하는 것은 그 ‘세계 속의 나’였으며, 그로부터 움직임을 수반하는 개체 스스로의 시각에 익숙해져 왔다. 수많은 매체들이 우리의 현실-세계를 반영하며 초점을 맞추었지만 정밀한 상을 얻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개체는 항상 세계를 조명하는 매체였다. 이러한 문법은 세계를 유영하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의 시각 투영에 기인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주변을 탐색하며 주체의 시선 변화에 조응하는 세계-환경을 꿈꾸기도 했었다. 주체의 이러한 욕망은 오히려 현실 세계와는 거리를 전제한 가상적 게임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게임의 가상적 시뮬레이팅 환경은 현실을 지시하는 또 다른 세계를 상정함으로서 세계-내-존재의 구도를 전복시켜 버릴 수 있었다. 최성록의 작업이 마치 게임 화면과 같이 보이는 이유도 이러한 까닭이다. 화면 속의 풍경은 실제 풍경을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한 것이지만, 그러한 실제적 지시 근거들을 화면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화면은 잘 짜여진 인공적 세계 그대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2 현기증과 스크롤링의 변증법

앞서의 가정대로 우리를 둘러싼 현실-세계가 고정된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 가능 여부이다. 화면 속의 주체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은 관객들에게는 빠른 화면 속 풍경 변화를 부차적으로 만드는 안정적인 요인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철저히 관객의 입장이라는 3자의 측면에서 관찰할 때 나타나는 감성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는 그렇게 고정된 채로 변화를 맞이하는 주체의 시선이다. 세계를 움직여 내가 원하는 조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은 비유적으로 세계 전체를 스크롤링 할 수 있는 전지적 관점의 획득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러한 환경 변화가 가속화 될 때 우리의 시각은 다시금 인식 가능한 범주 안에서의 시점의 선택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세계가 눈 앞에 현전한다고 가정해보면,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현기증과 같은 어지러움에 노출된다.

이러한 어지러움에 익숙해 질 무렵, 화면 속 자동차는 중심을 이탈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게 중심을 이탈하는 주체를 대신하여 또 다른 개체들이 화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대신해 커다랗게 화면을 채우는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하며 개체-중심적 시선과는 차별되는 이전의 시선을 다시금 보여준다. 그러나 비행기는 착륙한 이후 곧바로 화면에서 다시 사라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개체는 그 이후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살며시 나타나는 감시-비행정의 존재이다. 감시-비행정은 두 개의 시각을 보충하는 개체인 동시에, 실재와 가상 세계를 상호 의존케하는 매개체로 존재한다. 작품의 클로징 장면은 이러한 스크롤링의 세계인 가상적 평면 세계가 아주 얇은 피상적 매질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중재하는 매개체인 감시-비행정이 화면 저편으로 사라지며 중심적 시선으로서 화면을 이끌어오던 자동차는 얇은 평면을 뒤로 한 채 끝없는 어둠으로 추락한다. 주체 중심의 가상적 세계에 대한 스크롤링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3. 시각-통합체로서의 유령되기

매체에 의한 인간 시각의 확장은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매우 기본적 테마였다. 맥루한을 비롯한 캐나다 학파들의 주장은 여타의 매체 이론가들에 의해 부정되거나 재-매개되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인 매체에 관한 인식-체계를 구성해왔다. 우리의 신체적 제약은 매체로 인해 극복되었고 단일 감각에 의거한 인식의 수준은 복합 감각체로서의 매개된 신체성을 상기시켰다. 다만 인공적인 눈, 매개된 시각이 제공했던 시각의 확장은 다분히 시각의 편재성에 기초했다. 기존 인간이 지닌 신체적 한계로 인한 범주화의 수준을 매체들이 스스로의 특성들과 결합해 도처에 편재하는 눈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칭을 넘나들며 신적 존재가 되기도 하며 프레임 바깥에서의 시선 또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시선이 또 하나 등장했다. 매체가 지닌 본질적 특성으로부터 파생된 사이-공간에서의 유령적 존재로서의 시각이다.

및 연작들은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작품들로 파악할 수 있다. 세계-사이-존재인 매개체로서의 유령은 과거의 전지적 시점도, 1인칭으로부터 3인칭으로 귀결되는 인간 중심의 시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불분명한 위치성을 지닌다. 그러나 도처에 존재하는 매체적 특성을 매우 강하게 부여받는다. 따라서 감시-비행체와 같은 부유하는 속성으로부터 공중에서의 시각으로 특징화되지만 결코 감시 카메라처럼 우리를 통제하는 시선으로서의 성질로 파악되진 않는다. 우리 곁에 늘 존재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직접적으로 연동되지는 않는 동시에 특정 거리를 전제한 시선이며 그렇기에 안으로부터 바깥을, 바깥으로부터 안을 사유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시스템과는 구별된다. 프레임은 고정되어 있고 개체는 그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개체의 이동을 따라 프레임이 변동하지는 않는다. 드론을 이용한 항공 촬영 기법을 이용한 이 작품들은 개념적으로 불분명한 위치 값을 역설적으로 분명하게 부여받는 드론의 특성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리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유기적인 공중 부유체로서 활동을 지속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가 시각-확장체로서의 지위를 공인받게 되는 지점은 인간 주체와 매체간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선 통합체로서의 매개체적 시선이다. 우리의 존재를 초월한 그러나 결코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닌 유령과 같은 지점-높이의 투사체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