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red Lines: 원지호
Past exhibition
Installation Views
Press release
"만약에 이번에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하게 되면 유니언잭(영국 국기)에서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파란 부분이 빠진데" 영국 유학시절 같은 반 영국 친구가 일간지를 보며 내게 건넨 말이다. 건조하게 내뱉은 친구의 그 말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국기가 변한다......'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영국의 국기는 잉글랜드의 국기와 스코틀랜드의 국기 북아일랜드의 국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상징이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해왔고, 변할 수 있는 국기라는 가변적인 상징이 왜 내게는 가슴속에 새겨진 절대불변의 것이었을까? ' 라는 질문과 함께 자연스레 내 시선은 한국으로 옮겨졌고 내 눈에는 두 개의 깃발이 들어왔다.
런던의 거리 곳곳에 설치된 거대한 깃발들은 처음에는 생소하면서도 아름다웠어요. 특히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면 리젠트 스트릿(Regent Street)을 도배하다시피 설치되는 수만은 깃발들을 보면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죠.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그 깃발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특히 건물 벽면에 깃발이 없이 깃대만 설치되어 있는 것 (wall-mounted flagpole) 들은 큰 걸물의 발기한 성기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왜 런던에는 깃발이 이렇게 많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깃발이 가지는 의미를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깃발이라는 게 한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간단한 상징으로 시각화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그룹을 생각했을 때 하나의 공통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니까 구분의 상징인 거잖아요, 게다가 과거에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던 공격적인 사물인데 그 모습 그대로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깃발없는 사회'입니다. 처음에는 벽면에 설치되는 깃대를 파이프 굽힘 기계(pipe bender)로 물리적 힘을 가하여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휘어서, 힘이 빠진 남자 성기 모양으로 만들었고 'Peaceful Moment'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그런데 이런 외부 힘에 의한 변형이 공격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마치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모순된 슬로건처럼 처럼 느껴지고, 과거 소련 붕괴 후 사람들에 의해 밧줄로 쓰러뜨려지던 레닌 동상이나 걸프전 후 이라크에서 후세인의 동상이 쓰러지던 이미지, 또는 시위 현장에서 다른 나라의 국기에 불을 붙여 반감을 표시하는 행위(Iconoclasm)와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그 후로 매일 이층버스를 타고 멍하니 고민하고 다니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scaffolding structure 였어요. 흔히 아시바라고 부르는 그 구조물이요. 런던에는 오래된 건축물의 외관을 보존해야 하는 법률이 있어서 우리나라처럼 가림 막을 세우고 기존 건물을 철거 후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외관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폴딩 구조물을 설치해 외관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물이었어요. 이 구조물에 관해 조사를 해보니 고대부터 (5세기) 이집트, 그리스,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오래된 기술이더라고요, 특히 2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파손된 도시의 재건을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고 이 갑작스러운 대규모의 수요를 충족 시키기 위해 부품들이 지금처럼 모듈화되어 대량생산되는 스카폴딩 기술이 개발되어 상용화되었고 그 형식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스카폴딩 구조물은 건물을 새로 지를때나, 보수가 필요할때, 아니면 아예 철거해야 될때 건물에 일시적으로 설치되어 인부들이 작업할수있도록하는 건축물이잖아요. 이렇게 스카폴딩 구조물이 내포한 계획적인 변화의 의미와 일시적이면서도 무한한 확장 가능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스카폴딩 구조물 형식을 작업에 이용하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