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awing Room: 감범중 배성희 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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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조선은 오는 7월18일부터 8월 6일 까지 “The Drawing Room”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단지 드로잉의 개인적 변별성만을 가지고 구성한 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린다’는 것의 회복이 드로잉에 대한 재점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드로잉은 이미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장르로 독립 된지 오래되었다. 동시대 미술의 수평적 확장은 다양한 미술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 모더니즘의 시발점으로서 단색화의 현대적 이행 차원에서 드로잉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단색화의 발전적 구조로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여백과 반복, 우연성 혹은 즉흥성을 김범중, 유재연, 배성희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특징을 통해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전시기간 중 유재연 작가의 현장드로잉이 진행된다.
흔히 모더니즘 미술을 논할 때 자기지시성과 자기반성, 평면성의 물음에서부터 논의된다. 그러나 서구의 역사를 지나서 나온 이러한 계보가 우리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미술흐름의 수용 및 소화라는 명제가 서구 문명발달에 미치지 못하면서 부딪힌 한국에서의 현실은 당시 작가들로 하여금 절대와 순수라는 돌파구를 찾게 만들었다.
70년대 한국적 정서의 표현과 더불어 집단화가 이뤄지면서 한국적인 모더니즘의 등장을 알렸고 단색화라는 고유어로 오늘날 재평가되며 한국적 자의식을 획득하였다. 70년대를 지나 단색화의 발전적 구조로서, 또 그린다는 것의 회복으로서 드로잉이 부상되었고, 다른 미술형식에 개념적 또는 기능적으로 종속되었던 단순한 밑그림으로서의 드로잉에 대한 형식이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장르로 독립하게 되었다.
드로잉은 사실 그 바탕과 재료에 있어 크게 제한되지 않는다. 벽이든 유리든 바닥이든, 연필과 목탄, 붓 등 그 소재 자체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적 드로잉에서의 물성을 일원화 시켰던 것은 바로 전통적인 소재였던 종이였다.
서구에서 회화의 환영(일루젼)을 가능케 했던 과학적 투시법 및 원근법이 우리회화에는 애초에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이미 회화의 평면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여기서 평면에 주어진 공간감으로의 여백은 단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물성으로서의 종이의 표면을 지시하게 된다. 회화가 회화로 환원된다는 것은 평면의 실재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평면의 빈 공간을 선과 색으로 메우든 혹은 비우든지 한다는 것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스미고 칠해진 선, 형, 색 자체가 통합된 실재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드로잉은 단색화의 이행차원에서 모색해 볼 수 있으며 단색화의 두드러진 특징인 반복적인 행위와 패턴들, 빈 화면과 여백, 우연성과 즉흥성등 공통적으로 나타난 경향들이 양적인 풍부함을 가지고 외적 다양성을 분출하고 있는 지금의 작업 경향과도 맞 다아 있다.
반복행위는 양식이 가지고 있는 위엄을 해체하면서 고유한 물질성을 비 물질화 시키고, 선긋는 행위는 바탕의 질료와 기이하게 일체화 되면서 선긋기 자체가 내면의 수행적 단계에 이르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행위, 몸짓이 구체화되는 종이의 표면은 어떠한 대상이 작가의 의식에 나타나는 바로 그 순간 손짓에서 이뤄지는 즉흥적인 장소가 되며 자신의 감각이 환원되는 명상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에서 주관적인 판단이 유보된 채로 대상은 객관적으로 제시되며, 그것의 의미는 드러나기보다는 함축적으로 암시된다.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대립과 공존의 문제가 지극히 현실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데, 억압받거나 부정적인 사실을 은폐하려는 데서 탈 이미지 내지는 탈 표현을 강조한다. 잃어버린 풍경에 대한 회환을 지우고 비움으로써 일상에서 알아채지 못한 것들을 여백이라는 표피로 드러내 일종의 치유나 각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디지털을 넘어 가상현실의 시대에 들어섰다. 예술 또한 과학의 발전을 쫓으며 반응하고 있으며 개인적 사유에서부터 철학적 사유까지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고, 정치 사회 등 당대의 핵심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하고 비틀기도 한다. 전통적 계승이나 방법의 고수는 발 빠른 세계의 흐름에 정체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움의 한계에 부딪칠 때 찾는 것은 지나간 것들의 복권이다. 반복되는 역사가 그러듯 원형(原形)으로 돌아가 세계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다시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사유한다는 것은 작가와 작품, 그 속에 내포한 의미를 하나의 틀에 고정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방안에서 살아있음을 드러내며 꾸준히 반복할 때 무언가 견고한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낼 것이다. 일련의 이러한 제스처는 이론적 틀에 고정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진화를 위한 자기 돌아봄의 과정이 될 것이다.
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