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탐하다: 박능생

14 - 30 August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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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복잡한 사회적 삶 속에서 예술은 오랫동안 자연과 사회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환영과 신화를 미적으로 재생산해 왔고, 종교, 정치, 사상적 측면에서 동시대를 반영하며 현실을 이상화 시키고 때론 그 안에서 관념적 이상향을 꿈꿔왔다. 이제 시대의 흐름은 거창한 이념을 지나 현실의 평범한 일상을 되돌아보고 있다. 
서양문명과 예술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수용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한국 현실의 산업사회적 미감을 표출하기 시작했으며 매체의 확산이나 탈 장르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화 부분의 일련의 실험경향과 더불어 한국적인 정서의 표현을 위한 힘겨운 모색을 하게 된다. 전통 진경산수화가 중국풍의 화풍에서 벗어나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기법을 창궐하게 하는데 기여했다면 오늘날 한국화에서는 매체의 다양성에서 오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뿐 아니라 먹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그에 따른 실험적 결과물들을 쏟아내고 있다. 작품의 주제나 내용면에서도 도시나 사물, 기계, 미디어 속 가상이미지 등 그 방식과 암호들은 각기 다른 상황, 장소, 시대에 따라 이미지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읽혀져 오고 있다. 
박능생은 초현실적 환영의 이미지들이나 왜곡된 이미지의 지나친 작위성을 배제한 채 풍경도감처럼 시각적으로 재현된 파노라마형식으로 담아낸 통 감각적인 풍경을 선보여 왔다. 
말하자면 우리 주위의 세계에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대상의 다채로운 부분들은 이미지 전달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표상되지 않은 여백이나 추상적인 구도로 우리에게 일련의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한다. 형태와 형식을 비롯해 안료와 색채가 주는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자극은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의 조형의지에 따라 형태가 배치되고 변형되는 공간의 구도이다. 작가가 사생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시점으로 포착된 형태들의 이질적인 결합과 그것들이 놓여 진 구도 속에서 하나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때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 했다기보다는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박능생의 작업에 대체로 보이는 풍경은 거대한 자연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도시가 침식해 들어가거나 혹은 대도시가 자리 잡은 주변을 녹음의 자연이 감싸고 있는 듯한 이미지들이다. 떠있는 섬처럼 자연은 도시의 뒤 혹은 밑에 들어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풍경이 된다. 자연이 침식당한 곳에 콘크리트 벽과 철 구조물들이 자라나고 도시의 변화 속 이질적인 것들이 뒤엉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어쩌면 신비롭게 다가온 세상일 것이다. 신비롭다는 것은 대자연이든 거대한 도시 풍경이든 그것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 새로운 관계를 북돋아 준다. 자신의 일상적 공간을 반성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작가가 문인 정신을 체득하기가 어렵듯, 작가는 발품을 팔며 높은 곳으로 오르고 삶의 현장 속을 거닐며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사생한다. 대상과 대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의식하지 않는 익명의 관계들 속 즉흥적인 기록들이 작품화 되는 것이다. 결국 거리를 두고 생각하고 관조하면서 어수선한 시대의 시류에 조금 벗어나 다채로운 관계를 통한 사회현상을 다루고 있다. 현재의 삶에 부딪히면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자연과 도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렇게 일종의 순환적 과정 속에서 재생과 재탄생이 일어나는 것이다. 작가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분석을 한 보폭 더 나아가 관찰하고 그러한 상태를 유도하는 재구성의 작업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과 도시는 그렇게 공존하며 순환한다.
작가가 수묵이 가지고 있는 기운과 물상의 기운을 적절하게 구사할 때 풍경 속 거대도시는 소비적 광란과 축제의 흥분을 감추고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도시의 구획들은 자연과 도시의 구성 속에 스며들 것이다. 또한 농담의 변화, 갈필과 세필, 홍묵과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와 유형으로 번지고, 흘려 겹쳐진 표면에는 안료의 물질성이 고스란히 들어나기도 할 것이다. 
다시 끌어올려줄 안전장치를 달고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과 도시를 수직으로 가르고 떨어지는 대상은 마치 ‘먹’이 주는 감성과 맞닿아 전통적으로 상기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전통성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와 닮아있다. 그것은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스릴을 경험하고 혁신을 꿈꾸고자하는 열린 가능성으로의 의지일 것이다. 
 
(갤러리조선 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