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항해 II: 강소영릴릴

30 November - 30 Dec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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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결코 고요하지 않은 항해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김현정
 
강소영의 ‘고요한 항해’ 연작시리즈는 몇 가지의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여지는데 파도소리, 사람들, 이야기가 아닐까.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역사의 상처와 흔적들을 바라보며 흘렀을 파도,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모두 품고 있는 섬. 그리고 그 자리에 늘 그렇게 남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강소영의 연작시리즈 고요한 항해는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공개되어지는 드로잉, 사운드 설치, 사진, 해먹과 같은 오브제 못지않게 더욱 깊숙한 그 무엇을 바라보고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의 설명대로, 고요한 항해 연작시리즈는 “2009년 2월 백령도에서 시작되어 마라도와 가파도, 가거도, 독도를 끝으로 한반도 경계끝 섬을 다녔고 2010년 10월엔 대만과 중국 사이의 금문도 섬을 갔다. 이곳엔 여전히 치열한 전쟁의 흔적이 많지만 2008년 양안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이젠 섬 전체가 통으로 대형면세쇼핑센터로 탈바꿈하기 위한 거대공사가 진행 중이다.” 라는 노트가 붙어 있는 작업이다.  
 
이번 갤러리 조선에서 공개된 고요한 항해 연작시리즈 중 2번째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묵직하고도 섬세하게 다가온다. 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기록으로도 얻을 수 없는 현장에서의 목소리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서 지금의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해 남겨져 있는 실제 존재하는 흔적들에 대해 또 살아온 삶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해 주니까 말이다. 작가가 소망했고 의도했던 바와 같이 큰 역사의 이야기들과 현장들을 사운드와 함께 공개하는 작업을 지금까지 소개했다면, 이제부터는 그때에 함께 담아왔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보는 이들과 공유하고픈 시점이며 그 첫 번째 전시가 이번 고요한 항해의 두 번째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라데를 실질적으로 일본에 전파했던 인물-최영의(최배달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을 비롯하여 현재 금문도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며 그 섬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할아버지, 독도의 보트드라이버 김성도 할아버지, 금문도의 전쟁공원 관리할머니, 금문도의 민박집주인 황씨 할아버지, 그리고 굴을 채취하며 자녀들을 모두 공부시키고 그 섬을 떠나지 않는 자부심 넘치시는 백령도의 할머님까지. 그들 자신이 역사이고 변화된 시간과 공간이며 그분들 자체가 살아 있는 전쟁의 흔적이 아닐까. 
 
무엇보다 강소영의 작업에서 특이할 만 한 점은,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부분이다. 작가가 그의 작업노트에서 설명하듯이 “자연스럽게 여행을 떠나 특정한 장소에 나를 두는 것이 무엇보다 작업의 근원이 된다.” 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개입 중에서, <고요한 항해-II> 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의 세 가지 범주를 구분하듯 경계와 영토에 관한 작업, 지나간 시간에 깊은 연민을 갖고 조우한 것으로 이루어진 작업, 시각과 청각을 최대한 동원하여 공간 전체에 설치하고 관객에게 시간여행을 하도록 하는 산책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고요한 항해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 강소영은 이러한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3가지 영역들을 매우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현재 갤러리 조선에서 열리고 있는 <고요한 항해-II> 전시는 입구에서 금문도의 터널을 통과하며 촬영했던 영상을 필두로, 관람객들은 좁고 어두운 암흑 가운데 갇힌 느낌을 안고 전시장 안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터널을 통과한 이후에 섬과 해안가를 재연한 듯 관람객들마저 ‘자연스럽게’ 해먹에 누워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이어폰을 통해 관람객 각자가 파도소리를 자신만의 느낌과 소회를 가지고 감상하기에 충분한 설치이지만 그것으로 전부는 결코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금문도, 백령도, 독도를 항해하는 중에 촬영한 수만 가지 이미지들 중에 이번 전시에서는 백령도 철조망, 고량주 동상(monument), 금문도와 백령도에서 보았던 용의 이빨, 백령도의 콩돌해변, 백령도 사곶 해변의 국경을 넘어 날아가고 있는 새의 모습 등의 동북아의 섬들이 품어 왔고 현재도 간직하고 있는 전쟁의 흔적들을 파도소리를 들으며 따라갈 수 있도록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관람객들은 작가의 고요한 항해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간접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거대한 서사시처럼 거창하고 장엄한 영화 같은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우리네 삶속에서 가장 살갑고도 현실감 있게 접할 수 있는 그날의 우리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도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역사가 강소영의 작업에서는 방금 잡아 올린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듯 생생하게 살아있다. 작가 강소영은 이렇게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 치열했던 그때의 시간들을 지금 그리고 미래에까지 남기기 위한 기록을 담고, 파도소리를 녹음하고, 그 현장에 직접 자신이 몸으로 경험한 것들을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를 논할 수 없듯이 우리들 중 일부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했었던 생생한 역사와 이야기들을 무엇보다 ‘소리’ 로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우리에게 파도소리, 사람들의 육성, 작가의 인물 드로잉들과 더불어 그 땅의 현재와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고요한 항해라는 작품제목과는 달리, 강소영의 작업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무엇보다 강렬하고 진지한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들을 사실감 넘치게 재연해서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고요함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지, 상상을 하기 어려운 ‘치열함’ 과 ‘간절함’ 이 그 현장에 그리고 몸을 던져 체험하는 작가에게 있는지 가늠하기는 늘 어렵다. 어쩌면 다시는 잔혹하고도 끔찍한 역사들을 겪고 싶어하지 않을 우리들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저 일상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환경 가운데 생존을 위한 방식을 찾아가며 순응했을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는 그때에도 지금도 앞으로의 미래에도 우리에게 고요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바램대로 2012년부터 오키나와의 작은 섬들과 쿠릴 열도를 항해하며 고요한 항해 연작시리즈의 조각보를 완성하게 되기를 바란다. 강소영의 작업은 시각예술이 보여주는 매우 새롭고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존재하는 기록들을 재구성하고 공유하는 매우 ‘날 것’ 의 느낌 그대로를 전하고자 하는 창작이라 말하고 싶다. 시간의 영속성을 저버리지 않고 이번 고요한 항해II를 선보이고 있는 공간에서도 작가가 먼저 다녀온 고요한 항해의 일부분이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모두 이야기하는 효과와 여운을 남길 수 있도록 이번 전시도 관객과의 보다 깊은 소통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은 작가가 느꼈을 섬에서의 체취, 촉각, 순간적인 감정 등을 함께 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반면 작가가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파도소리, 남은 자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또한 우리 나름대로의 시각들을 확보하고 열어 놓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어쩌면 물리적으로 외로운 섬이기에 닫혀 있었을지 모르는 사건들, 이야기들, 시간과 공간의 ‘발굴’ 작업들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퍼올려져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 위에서 진행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