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지경: 서은애

14 - 27 Nov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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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몽롱지경(朦朧之境)
 
지금껏 내가 그려왔던 세계는 몽환(夢幻)의 정원과도 같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오래된 삶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환상의 공간.
 
이제 그 정원을 비추던 명료한 빛 사라지고
남겨진 간략한 형상 뒤로 검은 그림자의 조각들이 일렁대며 내려앉는다.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았다.
세세한 것들을 감춤으로 인해 오히려 드러나는 요체(要體).
 
흐릿한 어두움 속에서 감추어지는 것과 드러나는 것.
하나로 뒤섞여 분명하게 가늠할 수 없는 실존과 허상. 
그 차가운 경계를 부드럽게 허무는 그림자의 세계. 
놀랍도록 포용적이며 경외스럽도록 안온한 잔영(殘影)의 세계. 
물결처럼 출렁이는 그림자의 흔들림을 쫓아 
몽환의 정원, 그 신비로운 비밀 속으로 한 걸음 스며들어 들어간다. 
 
잔영(殘影)의 세계.
그 몽롱한 아름다움.
 
 
군자(君子)의 정원 
동양회화에서 산수화가 그려지고 그것에 대한 완상(玩賞)의 풍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위진남북조 시대의 일이다. 인간을 둘러싼 대자연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함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순환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진지한 자세는 동양의 철학적 사고의 바탕이 되었고 이 바탕 위에서 산수화가 태동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산수화가 지식인들의 삶과 더 밀접한 양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종병(宗炳, 375~443: 위진남북조 시대의 산수화가)의 "와유사상(臥遊思想)"이다. 이 "와유사상"은 종병이 노년에 늙고 병이 들자 이름 난 명산들을 직접 보기가 힘들어질 것을 우려하여 젊은 시절 유람하였던 자연의 명소들을 모두 그림으로 그려서 자신이 기거하는 방의 벽에 걸어두고 감상하며 즐겼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와유사상"에는 단순히 산수화를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운치(韻致)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실제 자연풍광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정신적 사유와 관조적 직관, 그리고 심정적 자유로움을 산수화 감상을 통해 대신 체험하고자 하는 일종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림 속에 담긴 자연은 단순한 완상하는 대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그리는 이나 감상하는 이 모두에게 자연의 속성을 궁구할 수 있게끔 유도함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인격을 수양하고 또 완성시키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띄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벽지산수(壁紙山水)의 개념을 떠올린 것은 이와 같은 산수화를 바라보는 종병(宗炳)적인 사고의 흐름 위에서이다. 방 안에 누워서 산수를 감상하고자 하는 고전적 욕망을 현대적인 삶의 양식과 접목시켜, 자연의 기운을 담은 개개의 형상들을 삶의 실제적 생활영역 속으로 보다 밀접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른바 벽지산수(壁紙山水)를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개념은 이 전시에 앞 서 진행된 제 6회 개인전 [유쾌한 은둔]展에서부터 윤곽이 잡혔으나 이러저러한 문제로 인해 구체적으로 작품화되지는 못하였다가 이번 전시에서 서서히 시동을 걸어보는 과정에 놓여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활한 산수(山水)형상보다는 오랫동안 동양의 문인(文人)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았던 사군자(四君子: 매梅/ 난蘭 /국菊/ 죽竹)를 단순화시킨 문양 중심으로 그림의 벽지화(壁紙化) 작업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해본다.
 
옛 군자(君子)들의 정원에 심어져 그네들의 정신과 마음을 환기시켰던 자연의 오랜 네 벗[四友]들을 이제 우리의 집 안으로 이끈다. 이 벗들이 어울려 엮어내는 푸르고 붉은 때론 스산한 정원의 한 귀퉁이에서 게으른 어깨를 철썩 내리치는 죽비(竹篦)처럼 번뜩이는 오래된 정신과 만난다. 
 서은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