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향해 : 강소영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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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남극 킹조지섬에서 조디악 고무보트에 몸을 싣는 것이 내게 그리 어렵지 않던이후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던 중, 우선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가장자리 섬부터 전부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철책과 바다로 에워싸인 나라에 사는 내가 자연스레 발길이 닿은 군사지역의 섬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듯 하다.
2009년 2월 백령도에서 시작한 첫 섬 여행은 마라도~독도~마라도~가파도~금문도~백령도로 다시 도돌이표처럼 이어졌다. 처음 백령도를 갈 때만해도 긴장이 감돌긴 했지만, 한가로운 느낌이 더 많이 들었고, 역사적 시류와 상관없이 늘 평화롭게 존재하는 풍광과 한적한 삶의 모습을 작품으로 건져내고 싶어서였다. 뱃멀미 하나 없이 그렇게 가볍게 마쳐진 첫 바닷길에 자신감을 얻고나서, 태평양을 마주한 최남단 마라도에서 바닷소리를 6개의 마이크를 세우고 사운드엔지니어들과 라이브녹음했다. 내친김에 독도까지 어렵게 스케줄을 잡아서 동도와 서도, 섬 전체를 휘돌며 둘러보게 되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고, 처음 백령도를 갔을 땐 고화질 HD촬영을 못한 터라, 제대로 찍으러 다시 가려하니 너무나 많은 사건이 서해바다에 생기면서, 2011년 2월에 꼬박 2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갈 수 있었다. 원래 ‘고요한 항해-A Voyage to Silence’는 이름 그대로, 복잡한 문명을 떠나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으로 가고자 했던 나의 조그만 바램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끄트머리 섬들을 처녀 뱃사공처럼 유람하며 보고 느낀 것을 선입견 없이 그려내려고 했는데, 작년 9월, 타이페이 개인전을 하며 금문도(金門島)까지 가게 되고, 말 많고 한 많았던 동북아시아의 섬에서 마주한 것으로 <고요한 항해-I>에서 보여주게 되었다. 많은 것을 채집했지만, 이번 개인전에서는 세 개의 섬 풍경비디오를 설치하고 사진, 드로잉을 전시한다. 추운 겨울 회색 빛 백령도 북쪽 해안가, 햇살 비치는 늦가을 금문도 해변, 그리고 1948년 미 공군의 폭격으로 두 동강이 난 포탄 가득한 독도의 물 속 깊은 곳.
모두가 때로 성난 시기를 거쳤지만, 때로 평화로운 곳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2010년 우연한 초대로 금문도를 먼저 못 보았다면, 백령도가 단지 위험하고 슬픈 곳으로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갈등이 해소되고 시간이 흘러도 표표히 있는 섬의 모습과 금문도 사람들을 만난 후, 사라져간 풍경과 지나간 세월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시간의 무상함을 더욱 드러내고 싶어졌다. 이제 고요한 항해는 출발일 뿐이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동아시아의 바닷길을 더 다니고자 한다. 한가롭고 깨끗한 섬 바람과 갈매기소리를 기대했던 나의 유람은 곳곳에 포탄의 흔적, 깨끗한 해변가에 세워진 섬뜩한 용치(龍齒)를 만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삶을 튼튼히 이어가는 아름다운 흔적도 마주하게 된다.
‘고요한 항해’ 전시는 비디오설치를 통해 관객에게 해안가 산책을 하는듯한 경험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