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n: 백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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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0여 년 전 언어로 유희하다 이미지 앞에 선 백지희는 순간 무중력상태에 머무른다. 그는 허공에 점(혹은 기호)을 찍어 상상하고 그 상상계로부터 주변의 상황과 질서를 연결하여 현존할 ‘이음 공간’을 만들어간다. 빈 공간에서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점과 점이 연결되고, 선과 면으로 확장되면서 ‘의미 있는’ 기호들로 탄생하였다. 10여 년 동안 이어가는 그 기호들의 상징 언어는 크게 (1997), (1998), (1999), (2000), <6 Mind>(2001), (2003), (2006), (2010)로 나뉘는데, 모두 개인전에서 쓰여 진 또는 쓰여 질 전시제목들이다. 각각 제목에 따라 연계된 Word cloud, Sweet talk, many, two many, Suddenly, teeming, Above, Self made, then, therefore, muse, dewy, afloat, webbed, the outer cavity, Knot to be, cross word, … 등이 붙는다.(영문표기는 한국에서 철학공부를 한 후 미국에서 ‘Fine Art’를 처음으로 접하였기에 본능적으로 영어표기가 자연스런 용어가 되었다.)
이 모든 단어는 작업할 때 천천히 그리고 순간 떠올리는 것으로 대부분 끊어진 언어들이다. 책이나 기억에서, 영화나 연극에서 혹은 자연과 자아의 결합에서, 때로는 무의식적 폭로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낙서형태의 작업노트에서 시작되는 어쩌면 짧고 긴 문장이나 시, 소설에서 소외된 음절언어처럼 여겨진다. 공교롭게도 끊어진 단어들은 그가 지녔던 심연의 샘물(자궁)과 만나 회화적 표면으로 등장하기 직전에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였다-밀고 밀리는’ 원형적 방위(수직과 수평의 교차)의 사고를 하며 인식의 막을 통해 그만의 형과 색이 표출된다.
그가 만들어 낸 ‘회화’란 의미를 미술사나 미학적 관점이 아닌 현장영역(재 서술된 공간경험과 동시대작가들 속에서 체험한 미시적 언어로서...)에서 다시 번역해본다. 백지희는 타인이 정의할 수 없는 자기만의 조형적 언어를 엮어냈다. 그러다 서서히 이를 발산시키는 독자적인 공간을 생성(, 2006)하는데, 특히 이번에 전시될 은 역설적으로 ‘언어와 공간’ 사이에 ‘회화’가 존재한다. 화면을 형성하고 있는 레이어(layer, 막, 켜, 겹)가 분명해졌다. 동시에 표면 안으로는 언어가 은밀하게 내재되어 있으며, 표면 밖으로는 공간이 레이어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안(언어)과 밖(공간)의 막 뒤에 숨은 은밀한 이미지 효과 때문에 회화의 일루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백지희의 ‘조형적 밀어(密語)’는 그의 오랜 축적으로 형성된 태도의 잔영에 대한 결과물로 존재하며 땅 바닥과 땅 밑처럼 회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 밀어는 기호나 상징체도 아니며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레이어들의 반동 작용에 의해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는 보이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조형적 밀어들의 낱낱을 마치 미로 여행하듯 더듬고 발견하여 회화의 막 뒤에서 그림자 극(劇)처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동안 찰나적 순간들은 켜켜이 쌓여가며 때를 기다린다.
이제 그 밀어의 잔영들은 인식의 막 뒤에 숨어 회화의 막을 조종하지 않고 공간으로 밀어내거나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보색관계를 포용하고 언어적 충돌을 끌어안아 회화의 막과 공간의 막을 교차시켜야 한다. 그래야 백지희가 추구하는 움직임과 이미지의 상승효과를 새로운 레이어에서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작가들은 상황이 주어지면 이미지로써 연극이든, 영화든, 움직임이든 닥치는 대로 상상할 수 있다. 가령 그에게 가변적인 미로 공간이 주어지고, 그림과 약간의 오브제가 주어졌다고 상상해보자. 드라마, 소설 같은 가설보다는 자기만의 이미지의 역사를 써내려가듯 미니멀아트 경향을 내세워 뒤에서는 축적된 다양한 기호들의 형과 색, 움직임의 내러티브를 선사할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은 첫 공백에서 시작하여 20년 가까이 체험한 이미지들과 삶의 켜가 조화롭게 그의 몸속에 채워져, 현재는 자율적인 조종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상황과 모험이 주어지거나 유혹이 들어와도 대처할 수 있는 방어벽들(밀어의 잔영들)이 세워져 있다.
새롭게 보여주는 은 지금껏 그림의 화두인 ‘상황을 그린다.’는 것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우연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시간(붓질과 인식의 흔적)과 공간(다시점의 환영)의 경험 그리고 때를 기다린 기억의 레이어들을 연결시켜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또한 평평한 화면에 네거티브(陰)와 포지티브(陽)를 겹치게 하여 잠재된 언어의 회귀적 본능을 일으키고, 그 관계에서 흘러내리는 액체 상태를 조절하는 찰나적 본성까지도 겸비하였다. 언어와 이미지는 그려지는 과정에서 그 언어가 술회되는 생각의 전환점들을 다시 흔들어 배열된다. 화면위의 이미지와 또 다른 이미지의 경계에서 자유로이 위치시키면서 언어와 이미지는 한 몸으로 거듭나며 자연스레 그 경계를 희석시킨다.
세상은 ‘비어있음’을 비웃듯 욕심을 채워나갔다. 건물도 채우고, 머릿속에 지식도 채우고, … , 하물며 밥도 채워서 먹는다. 하늘은 늘 비어있다. 때늦은 밤, 이른 아침에 물끄러미 환영의 끝을 바라본다. 끝이 없다. 예술은, 특히 그림은 채우고(그리고) 비우기(지우기)를 반복해야 환영이 완성된다. 백지희의 ‘비어 있음’에는 언어로 채워졌다 밀려서 이미지로 채웠다. 아니 대체되었다. 아니 그림 뒤에 숨었다. 자기만의 기호와 이미지로 내러티브를 만들어 서서히 움직이려한다. 관객은 이런 의도를 눈치 챘을까...?
이관훈 (큐레이터,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