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ven Knot: Soshi Matsunobe

3 - 29 October 2024
  • 그, 그림, 그림자: 소시 마츠노베의 선

     

    콘노 유키

     

     

    선을 긋는 행위에 관한 생각부터 출발하자—미리 말하자면, 선은 한 번 그어질 때, 시작과 끝을 (거의) 동시에 만든다. 선을 긋는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어떤 것’과 ‘어떤 것’을 구별하여 제한을 설정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런데 선은 구별의 출발점인 동시에 미끄러지는 지점을 내포한다. 선은 ‘어떤 것’과 ‘어떤 것’을 나누는 동시에 닿아 있다. 선이 그어졌을 때, 평면은 평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동시에 입체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면으로 구획될 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피상적인 해석이 구분에 주어진다면, 입체적인 해석은 접촉면에 주어진다. 그렇게 무게 중심이 평면에 주어진다.

     

    소시 마츠노베(Soshi MATSUNOBE)의 작업은 선이 주소재가 된다. 개인전 《Woven Knot》에서 작가가 다루는 선은 이전 작업에서 여러 번—그야말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소재이다. 화면에는 서예를 연상하듯이 순간적인 선들이 그어진다. 휘고 도는 움직임이 평면에 포개어지면서 그 안에 레이어를 만든다. 이때 레이어는 선들의 레이어뿐만 아니라 입체감을 만든다. 그 선 밑에 교차하(지 않)도록 흰 여백처럼 선이 남는다. 교차점은 비어 있는 상태로 남으면서 덩어리 내부에 앞뒤를 만들어 깊이감을 창출한다. <Woven Knot>(2016-)에서 포개어지는 선은 외관상 같은 형상에 깊이감을 다르게 만들어간다.

  • 행위의 흔적으로 남은 선과 겹치(지 않)고 빈 부분만 남은, 부재하는 선을 보고 우리는 다음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그 선은, 그림인가? 그 그림은 그림자인가? 작품에서 선은 평면에 머물면서 입체적으로 덩어리를 만든다. 이는 대형 벽화 작업 <Knot(Wall drawing)>(2021-)에서 검게 칠한 종이의 단면을 정면으로 보이게 다루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작업 또한 선의 앞뒤가 바뀌면서 덩어리에 깊이감을 만들어내는데, 출발지와 도착지는 동일하다—종이라는 평면의 단면이라는 같은 차원에서 출발하여 전시장의 벽이라는 같은 차원에 도착한다—다만, 각도의 차이를 동반하면서. 마츠노베의 그림은 실체와 환영, 평면과 입체를 구분함과 동시에 넘나드는 선을 그려나간다.

     

    <Knot(Wall drawing)>에서 평면의 기저를 이루는 일차원의 단면은 덩어리에 삼차원적 입체감을 가져다주지만, 이차원적 소재로 이차원적 공간에 설치된다. 그 안에서 창출되는 환영은 교차점의 공백으로 남은 선으로 만들어진다. 작품이 ‘입체적인’ 그러나 ‘평면적인’ 것에 머물 때, 선은 그림과 그림자를 그 안에 담는다. 보이는 선과 보이지 않는 선이 평면에 같이 놓일 때, 그림자가 특정 실체의 흔적이라는 점이 아닌 어떤 것—평면일 수도 있고 입체일 수도 있는 것처럼 작가는 선을 긋고 또 접촉시킨다. 그림자는 대체로 평면적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평면적일 수도 있고 입체적일 수도 있다. 흔적이지만, 그 소유격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그림자는 ‘그’ (무언가)에 머문다.

  • 고무줄이 자연스럽게 꼬인 모습을 입체나 사진으로 보여준 <Twisted Rubber Band>(2013-)나 시멘트로 만든 돌을 야외에 지속적으로 놓는 <My Stones>(2011-)처럼, 소시 마츠노베의 작업에서 반복은 중요한 점이다. 서예라는 비유를 앞서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예는 기본적으로 원본을 옆에 두고 따라 (잘) 쓰는 과정에서 여러 개 생산하고 작품으로 만든다. <Knot>와 <Knot(Wall drawing)> 또한 하나가 아닌 여러 점 그려진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복수와 단일함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남긴 선이 직선이 아닌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고무줄과 돌 또한 유연한 (윤곽)선을 가지는데, 변주할 수 있는 단일한 원본성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원본이 복제된 것이라 변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그야말로 ‘부각’시킨다.

  • 선은 출발하자마자 끝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 끝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소시 마츠노베의 <Knot>와 <Knot(Wall drawing)>는 형태의 단일한 원본성을 오히려 안에서부터 헤집고자 한다. 그림의 반복된 형태 안에서 그 형상은 언제나 그 형상이 될 수 있다. 같은 형태에도 깊이감은 다르게 만들어질 때, 입체적이지만 평면적인 작품 공간에서 어떤 것과 어떤 것은 나누어지지 않고 접촉면을 가지게 된다. 작품에서 실체를 가지기도, 환영을 만들기도 하는 선은, 결과적으로 점과 면 사이에서—교차점과 여백 사이에서 부유하듯이, 깊이감을 가진 덩어리로 창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