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김은현, 김주호, 박정애, 조인구, 정 현, 최병민, 한영실, 허숙경, 김수진, 서정국, 이수홍, 이영섭, 이형우, 정광호, 홍승남, 황혜선

13 January - 22 February 2006
Installation Views
Press release

  -작은 것들에 대한 주목

 

 조각은 3차원의 공간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다. 회화가 평면이란 공간에 서식한다면 조각은 공간에 존재한다. 허깨비나 가짜, 눈속임이 아니라 사실이고 진실이자 부정할 수 없는 세계다. 실재하는 현실계에 실감나게 자리하고 있는 조각은 그래서 회화에 비해 그 리얼리티나 현존성이 강하고 크다. 아울러 시각에만 응대하기 보다는 촉각과 물리적인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육체성을 지녔다. 그것은 환영에 머물지 않고 몸의 총체적인 반응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조각 앞에서 돌아다닌다. 서성이고 맴돌고 가까이 가보고 뒤로 물러나고 슬쩍 만져 보기도 한다. 공간에 사건을 일으키고 그 주변으로 사람의 몸을 불러들이는 이 조각은 애초에 인간의 몸을 대체한 불멸과 불사의 상징이었다. 말랑거리는 살을 대신해 단단한 돌이나 나무의 피부 위에 새겨진 몸들이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보는 이들의 눈앞에 자리했다. 공공의 장소에 기념비적으로 자리한 조각상들 역시 그 크기와 위용에 의해 특정한 권력과 이름의 무게를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했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크기와 질량감은 그 공간을 또 다른 공간과 의미의 장으로 파생시킨다.

오랫동안 조각은 커다란 규모와 중량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증거 했다. 기억을 저장하고 각인하는 한편 이데올로기를 후광처럼 드리운 기념비적 조각상들이 이제 다른 조형물로 대체되는 한편 전시장이란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조각의 크기와 부피는 불가피하게 조정되었다. 집단적인 기억과 추모,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조각이 그 임무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이제 회화와 함께 나란히 배열되고 걸리고 놓이는 선으로 조정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조각을 감상하는데 있어 더 이상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우러러보지 않아도 좋았다. 눈높이의 감상 내지는 내려다보는 조각의 등장, 나아가 벽면뿐만 아니라 바닥이나 천장으로 까지 퍼져나가는 조각 등이 이제 전시공간을 주된 삶의 터전으로 삼았음을 알려준다. 이후 전시공간에서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전이되는 한편 또 다른 영역으로 파급되는 조각의 생애를 본다.

그런가하면 동시대 조각은 무엇보다도 조각의 남근주의를 버리고 작고 가볍고 부드럽고 나아가 비물질적인 경지를 꿈꾸기도 한다. 작고 미세하다는 것은 자기 존재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묻히고 다른 사물들과 동일화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그것은 시각에 독점되기보다 인간의 몸에 보다 근접하는 것이며 물질성보다 존재성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최근 한국 조각계에 작은 조각/사물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작고 소소하고 가볍고 의미 없어 보이는 세계에 주목시키는 한편 크고 거대하고 무겁고 권력적이었던 것들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음성도 들려준다. 그간의 과도한 물량주의나 기념비성에 대한 거부 및 기계나 공장, 자본으로부터 벗어나 손의 회복과 노동을 끌어안는 한편 조각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아래 모든 과정을 거느리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인다. 오늘날 작고 조그마한 이 조각들이 지닌 의미는 그런 면에서 적지 않다. 단순히 크기와 덩어리가 작고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는 선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작고 가볍고 한 손에 감당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조각을 다시 인간의 품안으로 불러들이는 동시에 수직의 시선이 아닌 수평의 시선으로, 망막이 아닌 몸으로, 재료나 덩어리가 아닌 이야기와 존재로 조각의 실존을 다시 사유해보고자 하는 열망은 아닐까?

 

                                            박영택(미술평론,경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