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ument: 김민호

2 - 16 July 2020
Press release

작업노트_김민호

<Monuments>라고 명명된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과거의 사건을 소환하는 태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태도에 대한 작업이다. 기념비(추모비) 혹은 추모의 공간들은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 시간, 상징, 바라보는, 그리고 기억하는 사회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이고 기록이며 반성이고 미래에 대한 자세이다. 함축된 추모공간이 주는 이미지는 그래서 다양하게 읽힌다.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 다양한 인식을 이미지로 재현하고자 했다. 작업 안에서 수 없이 겹쳐진 레이어(찰나적 이미지)들을 압축해서 대상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 공간을 이동하면서 관찰하는 횡적인 이미지들과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종적인 이미지들이 작업 안에 쌓인다. (하나의 화면 안에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수집된 대상의 종적 이미지들과 이동되는 시점 속에서 수집된 공간의 횡적 이미지들을 담아 냈다.) 이를 통해서 대상에 대한 찰나적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종, 횡적 이미지를 쌓아 대상을 재현했다. 관객들은 대상에 대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의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재현된 이미지에서 포착한 각자의 이미지를 능동적 해석하고 인식하게 된다.

이 전시는 베를린과 광주의공간을 중심으로 기획 했다. 나에게 광주와 베를린의 물리적 거리감은 두 도시의 추모   공간 안에서 상쇄 되었다. 사건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들은 그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는 두 도시의 태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공간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작업은 100여 장 안밖의 장면을 누적시켜 완성된다. 대상의 이미지는 흐릿하고 모호한 실루엣으로 만들어진다. 대상을 관찰하는 다른 시점들의 누적효과는 선명하고 자세한 장면의 묘사와는 다르게 소실점이 흩어져 흐릿하고 모호한 이미지로 기록된다. 나는 우리의 인식태도가 이 모호한 흐릿함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구성하고 인식하듯이 나는 작업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다시 구성한다.

#1 육면체의 커다란 콘크리트 사각 구조물은 어느 새 내 키를 훌쩍 넘었다.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땅은 낮아져서 상대적으로 구조물은 높아졌다. 빛, 소리, 하늘, 시야는 구조물로 통제되고 있었고 그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내 시야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인식되는 공간의 모습들은 끊임 없이 다르게 다가왔다.

-Holocaust memorial, Berlin에서-

  #2 브란덴브르크 게이트에 대한 나의 첫 이미지는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세계관은 그 사진 한 장으로 확장되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0년대 초 유럽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가져온 이국적인 선물들과 기념 사진들, 특히 아버지가 사오신 관광지의 기념 슬라이드 필름(마운트 된)들은 그때는 흔하지 않은 빔  프로젝터로 불꺼진 방안 벽지위에 생소한 이미지들을 쏟아 냈다. 나는 그때의 시각경험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진 속 아버지의 뒤로 보이는  브란덴브르크 게이트의 모습은 온갖 낙서로 뒤 덥힌 높은 벽으로 가려져 있었고 구조물 위에 간신히 보이는  전차를 탄, 창을 든 여신의 뒷 모습 장식물이었다. 한정적인 시야의 사진으로 보던 그 이미지는 tv 화면 안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환호하고 장벽이 무너진 공간의 이미지로 바뀌었고 여행을 통해 실재로 바라본 브란덴브르크 게이트는 미디어를 통해 인식한 이미지와 달리 관광객과 시민들이 얽힌 관광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Brandenburg Gate 작업중에-

#3 대학1학년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인식한 518이라는 사건은 물리적인 거리감과 상관없이 나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2018년에 방문한 광주는 나에게는 첫 방문이었다. 우연히 작품을 전시한 장소(국립아시아문화전당)는 옛 전남도청자리에 있었고 마주보고 있는 전일빌딩도 볼 수 있었다.(빌딩 입구의 안내판을 읽지 않았다면 그 낡은 건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평일 오후의 광장은 한가롭고 조용했다. 나는 전년도에 방문한 베를린의 공간들을 떠올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공간의 분위기는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다. 옛 전남도청 뒤로는 현대적인   공간이 들어서 있었지만 도청건물 뒤로 낮게 자리 잡고 있어서 오래된 건물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고 있었다. 추모적인 기념공간이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그 공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베를린에서도 광주에서도 공간의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고 있었다.

-Monument_전남도청 작업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