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빚은 풍경: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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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빚은 풍경
나의 작업은 그동안 ‘모호한 장소’ 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듯 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현실적이기도 한, 뚜렷하지 않은 공간을 표현하였기에 작품은 주로 커다란 빛의 축으로 표현된다. 빛의 방향으로 지정된 어느 지점은 동굴처럼 다시 어두워지는 부분이 생기면서 풍경적인 외향은 점차 내면적인 표현으로 변화한다.
동굴을 닮은 풍경은 빛과 어둠으로 나눠진다.
빛은 어둠을 드러내기 위함이고 어둠은 빛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빛과 어둠 솎에서 언제나 방황하고 좌절하지만 그러기에
삶은 이어진다. - 박미경
소통의 중추로서의 불확실성-추상과 구상 사이
박미경의 회화는 그 결과만큼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녀의 그림을 만나는 첫 순간 어둡고 묵직한 중량감을 지닌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씩 그림 가까이 다가가자 공격적으로 보일 만큼 강한 검은 풍경은 짧은 선의 묶음이자 강박적인 움직임이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짧은 붓질에 의해 완성된 그녀의 회화를 추상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이 모든 과정을 뒤로 하고 결과론적으로 풍경화라 불러야 할까? 이에 관해 작가는 특정적인 규정을 하지는 않는다. 본질적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붓질에 의해 나타나는 형태가 유기적으로 다른 형태와 만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에 방점을 두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자연의 재현과는 다르지만 ‘풍경’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마치 판타지 영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초자연적인 풍경과의 유사성은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보는 이가 가진 인식의 틀에 의해 해석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없는 몽상적 회화-반복과 수행
그녀의 회화는 마치 주술적인 의례를 치르는 것처럼 간헐적인 선과 반복적인 행위로 이루어진다. 초반에 언급했듯, 사고 이후 신체 마비 상태에서 머리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비현실적인 장소, 자연을 닮았으나 자연과는 무관한 어떤 형상, 하나의 선이 다른 선을 만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을 닮은 이미지였다. 추상과 구상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는 그녀의 작업은 아마도 작가 자신이 생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그림 그리기’를 수행하는 듯하다.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실처럼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에 가까이 다가가자 모든 것이 환영이었다는 듯이 결국 몇 개의 선들, 붓질의 겹침이 만들어낸 추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박미경의 회화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일 것이다. 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