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ng : the green ray: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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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the green ray 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광선의 타이틀에서 차용한 것이다. 영화 주인공 델핀느가 기대하던 여름휴가를 보내지 못하여 실망하며 길을 걷는다. 그녀는 우연히 스페이드 녹색카드를 한 장 발견 하는데, 델핀느에게서 녹색이란 나쁜징조이며, 징크스이다. 길을 걷던 중 물을 마시며, 노인들의 대화 속에서 녹색광선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녹색을 발견한다. 수평선 너머의 빛나는 녹색광선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 그리고 녹색 빛의 찰나를 마주한다. 이처럼 그 길 목, 그 찰나의 순간이 삶의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게도 많은 녹색신호들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목마름을 채워주던 생수 한통에도, 길을 걸을때 선을 밟지않겠다고 까치발로 껑충거리고 뛰거나, 길 위로 떨어진 낙엽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을 때처럼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중요한 일을 앞두고 평이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가끔 자기만의 행운의 신호를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결코 좋은 날만이 계속되지 않은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 다시 떠나야 할 곳과 다시 떠나야만 하는 곳을 반복하며. 지도를 펼치고, 그 곳을 향해 길을 걷는 작가의 맵핑 작업이다.
김정은 작가의 길에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작가는 걸으면서 구상하고 상상하고, 발견한다. 반복되는 일상과 습관의 굴레에서 유일하게 해방되는 것이라 여기는 일탈의 움직임이다. 그 안에서 문득 영감을 얻기도 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며 그가 떠나온 곳과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재하는 것과 부재의 기초위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편집해나가며 결국 남겨지는 것에 집중한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 인식 체계를 따라 주변을 맵핑하는 작업을 해왔다. 소위 counter-cartography라고도 불리는 맵핑 형식의 작업들이 갖는 지리, 환경을 접근하는 방식의 토대 위에 있는 작업임에도 특이성은 접근의 결과물을 시각화하는 방식에 있다. 맵핑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작업들이 주로 지도와 리서치의 결과물들을 동반한 작업의 형식을 띠면서,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이 감각은 이동의 속도가 다른 조형물의 움직임과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사운드와 이미지가 주는 감각은 흡사 주관적 데이터를 규칙에 따라 조형된 조각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시각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점이 여타 맵핑 작업이 갖는 시각적 유사성으로부터 본 작가의 작업의 특이성을 만드는 주요한 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