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태도: 허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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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나를 향해 벅차게 다가올 준비가 되어있다. 공기마저 먼지로 가득한 세상은 과거 공상과학 영화가 제시한 시대상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빠르게 그 모습을 바꿔가며 점점 더 비대해진다. 어쩌면 포화상태에 다다른 세상에 내가 뒤늦게 태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이라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압도된다는 표현은 딱히 테크놀로지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매일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은 가뭄을 모른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사회적 쟁점들은 하나하나 열거할 엄두조차 들지 않는다. 이 사회적 쟁점들은 타인을 한 번이라도 다시 인식하게끔 하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이렇게 다르구나, 그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실감케 한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사회 문제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과의 문제만으로도 삶은 부지불식간에 복잡해질 수 있다.
뒤죽박죽 쌓여있는 문제들 중 무엇 하나 쉽사리 해결되는 것은 없다. 꼭 테트리스 게임 속 우습게 본 단순한 블록들의 낙하가 그 속도의 완급 조절만으로도, 또는 무심코 놓여진 블록 한두 개만으로도 금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들은 다가오는 그 속도와 방향에 따라 얼굴을 달리한다. 풀리지 않은 문제들은 또 어디 결코 도망가는 법도 없다. 차곡차곡 어디엔가 조용히 쌓이고 있다가 불쑥 그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에는 손쓰기에 너무 늦어버린 상태다.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한 허용치라든가 수용 가능한 마지노선이 있다면 내 경우에는 어디쯤 도달했을까 생각해보다 어느 순간 벌써 한계치가 임박한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내 코가 석자란 말은 좀 슬프게도 어느 때나 딱 들어맞는다.
벅찬 세상이 눈앞에 서 있다. 언제 무너져도 딱히 놀랍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이 세상은 흡사 서커스의 곡예 장면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세상이 이렇게 불안정해 보이는 이유를 찾아보려 하지만 나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 결국 아득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도무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적어도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일까 다시 물어본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국 내 한 몸이 살아가는 궤적에 한정되어있고,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듯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또한 매번 제한적이다. 경험한 것과 미지의 것이 혼재한 세상은 그래서 영원히 불가사의인 상태로 남는다. 쉼 없이 자전하는 땅 위에 서서 이 찰나의 순간에 집중해본다. 비록 곧 스러질 모래성이라도 지금을 쌓아본다. 돌아오지 않는 어제와 붙잡을 수 없는 내일이 아닌 벅찬 오늘의 세상을 기꺼이 맞이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