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Tomorrow, Shaping Today: 원지호

6 - 26 Apri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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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갤러리조선은 2018년 4월 6일부터 4월 26일까지 원지호 작가의 개인전 < 미리 지어진 전쟁기념물: Remembering Tomorrow, Shaping Today >를 진행한다. 원지호 작가는 현대 조각의 역사를 반영한 설치 작업들을 진행하여 왔다. 과거 기념비적인 조각, 혹은 기념물의 영역에서 ‘받침대’는 작품을 가장 빛나게 하면서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숭배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관람자는 대리석이나 돌처럼 물성이 짙은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 작품을 보면서 짙은 향수나 애국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기념비적인 조각의 전통을 뒤집으면서 현대적인 조각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고, 또 확장되어 왔다. ‘받침대’는 없어지기도 하고, 땅에 붙기도 하고, 혹은 단순한 모듈로 연속되기도 하면서 작품은 보다 장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간과 연관되기 시작한다. 
 
원지호 작가는 위의 ‘받침대’의 변화가 사사하는 ‘기념물’의 특성을 오늘날 조각의 영역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본래 ‘모뉴먼트monument’로서 상징되는 기념물은 광장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 설치되어 국가 권력을 전시하는 과정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작동해왔다. 이렇게 정치적 도상으로 점철된 기념물에 점차 사람들의 추억이나 기억, 애도의 감정이 추가되면서 기념물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히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물(Vietnam Veterans Memorial)>의 등장 이후 모뉴멘트는 광장의 사람들에게 매우 다른 의미로 다가가고 있다. 기념물의 모습은 매우 수평적이기에 누구나 이 기념물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물리적 공간 요소의 특성을 지니며, 기념물이 놓인 넓게 열린 공간은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압도한다. 개인의 이름이 새겨진 수평적 기념물은 그 위를 ‘걸어가는’ 과정을 통해 기념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신체적 경험을 수반하며, 물리적이고 미학적으로 강요나 긴장감이 아닌 ‘개인들의 희생’에 대해 묻고 있다. 이와 같이 더 이상 권위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은 공감과 체험의 요소는 원지호 작가의 작업과 일맥상통한다. 
 
원지호의 작업은 공사장에서 흔하게 쓰이는 재료로 권위적인 깃발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형태의 깃발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 그리고 기념물을 바닥에 눕혀 수평적이고 모듈화된 미니멀리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확장된 기념물’의 양식과 역사를 이어간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전쟁의 시점을 ‘미래’로 옮기는 시도를 통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기념물을 제작한다. 
 
지하 공간 바닥에 설치될 ‘확장된 기념물’의 형태인 거대한 고무판이 전시의 중심이 된다. 합성고무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치루기 위한 가장 생산적인 대표적인 재료이자 부산물이다. 화학적인 냄새까지도 공간에 녹아들만큼 강력한 합성 고무를 바닥에 놓음으로써 과거의 영웅 중심적인 전쟁의 역사를 수평적인 과정으로 펼쳐보고자 한다. 2층의 작업은 과거를 반영한 ‘미래의 작업’으로 ‘투명함’으로 채워진 모듈을 선보인다. 시점을 미래로 옮겼지만, 기존의 역사가 가진 흐름을 반영해 본 작업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을 늘 상기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 ‘기념물’을 만든다는 것은 전쟁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원지호 작가의 작품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과 전쟁과 권력의 기재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의 정세를 전시 안과 밖에서 다시금 살펴보며, 다가올 시간에 대한 각자의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미리 지어진 전쟁기념물, (작가노트)
 
 
과거의 전쟁기념물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째로 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태양 혹은 종교와 연결시켜 기념하는 수직적인 기념비들을 볼 수 있다. 하늘을 향에 솟아있는 이런 오벨리스크 형식의 기념비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희생자들의 죽음을 하늘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신성시한다. 지금같이 고층빌딩이 없었던 과거를 상상하면 하늘과 지상을 연결시키는 이런 수직적인 기념비들이 얼마나 효과적이었을지 이해가 될 것이다.
 
둘째로 군인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이데올로기적 기념물들이 있다. 주로 냉전시대 때 많이 보이던 기념물들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볼 수 있는 기념물의 형식이다. 셋째로, 과거에 기념비를 올려다보던 시대에서, 이제는 손에 닿고 발을 딛고 걸으면서 스스로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써 역할을 하는 기념물들이 있다, 이런 '공간' 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전쟁기념물 중에 대표적인 기념물이 미국 워싱턴에 만들어져 있다. 마야 린(Maya Lin)이 설계한 '베트남 참전군인을 위한 전쟁기념물(VietnamVeterans Memorial)' 에는 수평적으로 깔려있는 검은색 대리석 벽들에 희생된 군인들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검은 벽을 따라 걸으면 희생자의 수많은 이름과 그 검은 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기존의 수직적인 형태의 기념물들이 집단으로 기억되었다면 마야 린의 기념물은 개개인이 기억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직 생존해 있는 베트남 참전 미국 군인들이 생을 마감하면 그들의 이름이 새겨질 빈 공간이 남겨져 있다. 그렇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기념비에 시도되었다. 
 
이번 전시 '미리 지어진 전쟁기념물'은 이 시제를 미래로 옮겨보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냉전시대 후 그대로 얼어붙어있는 남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는 터라 완벽한 미래형이라고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기념비인 것은 확실하다. 물론 이 작업은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기념물이다, 그래서 어쩌면 또 덧없는 희망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계질서를 위한 힘겨루기나 타국들의 경제 침체의 돌파구로써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자각하고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장소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