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고 춤춰줘

최수인 Choi Su In

April 10 - May 3,2019

작가는 본인과 주변관계를 관찰하고 그 관계의 상황을 가상의 장소와 주체로 구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 '날보고 춤춰줘(가제)' 역시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작가가 처한 상황과 그 안의 관계가 변화함과 동시에 말하고자 하는 관계의 장면 또한 변화해왔다. 2016년 두 번째 개인전까지는 서로를 위장하는 관계 안에서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 채 그 관계 너머로 넘어가지 못하고 멍하니 있게 되는 상태, 즉 긴장하는 순간과 서로의 관계를 넘어설 이야기가 없는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표현했었다. 또 장면들은 각기 다른 여러 개의 미장센이 되어 작업으로 이어졌다. 세 번째 개인전부터는 이러한 위장 관계 속 주체 간에 ‘가짜 인정’이 발생한 후 그들이 다음 행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가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할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네 번째 개인전에서는 잠시 다음 행동에 관한 질문을 뒤로하고 주체를 관조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관해 궁금했다. 그 절대적 존재를 ‘신’이라 칭하고 그 신에게 있을 '신의 자리'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영역 안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했다.

이번에 준비 중인 전시는 앞서 언급한 ‘가짜 인정’ 후 다음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춤’ 이라는 행동으로 감정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춤을 추는 행동을 함으로써 관계의 진실한 의미가 없고 가짜임을 증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작품에서 ‘춤’은 가장 순수한 움직임을 보고 싶다고 타인에게 주체가 요구한 행동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위해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서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을 가정한다. ‘이 관계는 진실하지 않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위장관계를 폭로하는 것에서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넘어가고 현재는 또 다시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려 한다. 이런 작품의 변화는 작가의 실제 삶에서 작가가 이루고 있는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그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는 관객을 자신이 그려놓은 관계의 무대 위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관객에게 말한다. 당신의 관계는 진실한가요? 당신은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주고 있나요? 작가가 바라보는 관계의 풍경은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을 이미지화하여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도 작가의 시선으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 관계라는 것은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끝없이 노력함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결국 그것이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전시 제목 <날 보고 춤춰줘>

# 작업내용

나의 작품에는 세 가지가 반드시 등장한다. 나, 나의 주변 그리고 그 관계를 관조하는 외부세계가 그것이다.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순간의 혼란 및 충돌로 만들어지는 감정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작업은 외부의 어떠한 ‘응시’하에 방어기제로 위장한 주체의 모습(나의 심리적 모델)과 이들을 감싸는 가혹한 환경을 가시화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은 작품에 등장하는 요소에 대한 설명이다.

1. 주체 (나)
보통 주체는 털이 많이 나버린 생명체로 그린다. 이는 위장을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은 대상의 부끄러운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자연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장소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대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감정 및 태도로서 존재는 소품 같은 것이다. 따라서 주체를 제외한 주변 이미지들은 모두 스스로 존재하고 유동적이며 충동적인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변형 중이다. 따라서 내 그림은 풍경이 아니라 순간의 ‘장면’이 된다. 풍경은 한 장의 펼쳐진 그림이다. 그리고 장면은 연속되고 계속 이어지는, 앞으로 무엇이 올지 모르는 현재의 순간이다. 나의 그림 역시 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붓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순간조차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관계와 외부세계에 반응한 것이다.

2. 관계 (나의 주변)
그림에 등장하는 심리적 대상(주인공)과 이를 응시, 조롱하고 있는 외부의 ‘어떠한’ 존재는 서로간의 성격을 조작하고 통제하며 긴장감을 만들고 그들이 등장하고 있는 주변환경과 유기적으로 조응하며 순간의 상황에 집중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선택하게 되는 표현방법, 색의 선택 역시 이들 관계의 성격이 형성됨에 따라 결정하며 이 즉발적인 표현을 그대로 남기고 작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내 작업 안에 미리 결정되어 있는 스케치, 이야기의 서사, 계획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변할 것이다.

3. 외부세계
외부세계로부터 대상을 향해 오는 눈길이 있다. 심리적 대상들은 이 시선을 부드럽게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심한 갈등으로 부딪히며 서로를 밀어내는 상황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보통 외부세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마을을 지키는 정승처럼 우뚝 서있는 자연물의 형상이나 괴물 혹은 귀신처럼 보이도록 그린다. 이는 저마다 사연은 있겠으나 확실한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 역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4. 작품명
각 그림마다 보이는 주인공들의 위치, 동선, 태도, 주변과의 추측 가능한 긴장감등과 함께 그림 제목이 중요하다. 나는 내가 경험한 관계의 성격, 이와 관련된 사건 등을 그림 제목을 통해 작은 모티브만으로 노출한다.

5. 무대 - 행동이 있는 곳
나는 심리상태에 기반한 감정과 태도, 이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계를 극화(劇化)시켜 다양한 형태의 미장센을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린다. 작위적일 수 있는 가상의 무대 위에 기이한 감정적 현상과 심리 대상들의 행동을 형상화 한다.

“줄 위에 오르는 것이 삶이다. 그 나머지는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다”

(디트로이트에서 공중 줄타기 공연 중 단원들이 죽는 사고를 겪은 후에 다시 줄에 오르며 칼 월렌다가 한 말) (어빙 고프먼의 <상호작용 의례> 중 발췌)>

무대 위에서 타인을 향한 거대한 움직임, 앞서 작업내용에서 언급한 일종의 ‘춤’ 일 수 있고 또 위의 인용구에서 말한 ‘줄 위에 오르는 것’ 일 수 있다. 타인을 향한 움직임은 타인의 시선아래 있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의 삶일 수 있다. 혹은 완벽하게 타인을 위함일 수 있겠다.

내가 그리는 가상의 무대는 평소 인간생활의 난장을 극화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런 난장 속 여러 형태의 행동 중 하나일 ‘춤’에 대한 의미와 시각화에 대한 연구이다. 누군가가 가면을 쓰고 추게 될 춤의 동기, 진실성 여부, 시각적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평소 인간생활을 억압하던 제약과 인간 사이에 빚어졌던 갈등이 난장 속에서 적나라하게 노정되는데, 이와 같이 뒤엎고, 부수고, 대들고, 난장판을 만들고 하는 마을 굿의 반란 동기를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행동과 대립 속에 양식화 한 것이 가면극이라 보았다.” (전경욱의 <한국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중 발췌)

<날 보고 춤춰줘> 전시는 ‘우리’라는 진실 되고 순수한 관계 안에서 한도 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상태의 주체를 바라보는 시간을 만든다. 관계는 서로를 완벽히 만족시키지 못하며 진짜 사랑을 달라고 서로에게 요구한다. 어느 순간에는 완벽한 애정관계의 상황인 줄 알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결국 타인의 욕망을 또 다른 타인은 절대 채워주지 못한다. 진짜를 원하는 순간 가짜임을 증명하는 안타까운 타인과의 관계 속 긴장된 순간을 그리는 전시가 된다. <날 보고 춤춰줘>라는 제목은 타인의 가장 순수한 쾌락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강력한 개인의 이기적 욕망의 순간을 설명한다.

노트

나의 그림 안에서 심리의 흐름은 단순히 모든 장르를 망라한 예술에 흐르는 심리인 동시에 소재의 측면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

나는 나의 주변 관계, 이외의 외부세계를 통해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과 그로 인해 순간의 혼란 및 충돌이 발생하는 감정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 작업은 외부의 어떠한 ‘응시’하에 방어기제로 위장한 주체의 모습(나의 심리적 모델)과 이들을 감싸는 가혹한 환경을 가시화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외부세계로부터 대상을 향해 오는 눈길이 있다. 심리적 대상들은 이 시선을 부드럽게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심한 갈등으로 부딪히며 서로를 밀어내는 상황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보통 외부세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마을을 지키는 정승처럼 우뚝 서있는 자연물의 형상이나 괴물 혹은 귀신처럼 보이도록 그린다. 이는 저마다 사연은 있겠으나 확실한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 역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심리적 대상(주인공)과 이를 응시, 조롱 하고 있는 외부의 ‘어떠한’ 존재는 서로간의 성격을 조작하고 통제하며 긴장감을 만들고 그들이 등장하고 있는 주변환경과 유기적으로 조응하며 순간의 상황에 집중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선택하게 되는 표현방법, 색의 선택 역시 이들 관계의 성격이 형성됨에 따라 결정하며 이 즉발적인 표현을 그대로 남기고 작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내 작업 안에 미리 결정되어 있는 스케치, 이야기의 서사, 계획은 없다.

각 그림마다 보이는 주인공들의 위치, 동선, 태도, 주변과의 추측 가능한 긴장감등과 함께 그림 제목이 중요하다. 나는 내가 경험한 관계의 성격, 이와 관련된 사건 등을 그림 제목을 통해 작은 모티브만으로 노출한다. 그리고 더욱 친절한 그림해설은 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몫이다. 어차피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관계에 대해 모두 다른 해석을 해내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는 맞고 틀림이 있지 않다. 해석 이후 정리와 기억에 관한 부분은 더욱더 그렇다. 나는 이런 식의 사람의 태도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있고 계속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문장이 아닌 짧은 단어로 던지며 작업을 할 생각이다.

캔버스 화면은 모두가 자유로운 무대가 되고 그 안에는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자처하는 주체간의 사이코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무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특별히 자연풍경이미지에 집중을 하여 그림이 풍경화일 수 있다든지 보이는 표현이 거칠고 빠르며 형태가 애매하다고 하여 추상화에 속할 이유가 없다. 내 그림 안에는 어떠한 형태로이든 성격이 있는 대상, 주체가 확실하게 등장하며, 이를 혹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등장한다.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면 주변 환경 구성을 통해 이 시선을 표현하기도 한다.

보통 주체는 털이 많이 나버린 생명체로 그린다. 이는 위장을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은 대상의 부끄러운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자연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장소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대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감정 및 태도로서 존재는 소품 같은 것이다. 따라서 주체를 제외한 주변 이미지들은 모두 스스로 존재하고 유동적이며 충동적인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변형 중이다. 따라서 내 그림은 풍경이 아니라 ‘장면’이 된다.

나는 심리상태에 기반한 감정과 태도, 이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계를 극화(劇化)시켜 다양한 형태의 미장센을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린다. 작위적일 수 있는 가상의 무대 위에 기이한 감정적 현상과 심리 대상들의 마음 동요를 형상화 한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중인 모든 것이 누군가가(혹은 스스로가) 인위적으로 인과관계 없이 재배치 중이라는 점과 그 안의 옳고 그름의 잣대역시 배치 중이라는 점, 따라서 순간적 이미지로 남을 ‘장면’ 만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점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가짜’ 로 해보고 싶다. 작업을 통해 가짜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와 그 안의 태도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 없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한다.